'탐오랑비→횡령'…북한이탈주민 위한 재판 안내서 첫 발간

입력 2017-03-12 09:05  

'탐오랑비→횡령'…북한이탈주민 위한 재판 안내서 첫 발간

재판절차·남북 용어 차이 등 쉽게 설명…"브로커 주의" 등 안내

"소송하려면 변협·법률구조공단 무료상담·구조제도 이용하세요"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처벌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브로커일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에선 협의이혼이 안 되지만 한국에선 가능합니다"

법원이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사법제도와 재판절차를 알기 쉽게 소개한 첫 안내책자를 발간했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원장 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은 소송별 재판절차, 법률용어 등을 담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재판절차 안내'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기존에도 탈북민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한 사법제도 관련 자료들은 있었지만, 법원이 직접 안내서를 만든 건 처음이다.

책은 크게 소송 유형을 민사·가사·형사로 구분해 소송별 법률 개념과 재판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민사재판 소개를 보면 소장을 작성하는 방법부터 소장의 인지대와 송달료 납부방법, 법정에서 판사와 원고·피고석의 위치가 표시된 사진까지 재판절차가 쉽게 풀이돼 있다.

가사재판에서는 탈북민의 이혼에 대한 특례규정을 비롯해 북한에서 인정되지 않는 협의이혼에 관해서도 미성년 자녀 유무에 따른 숙려기간 차이 등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특히 북한과 큰 차이가 나는 형사재판과 관련해선 인권 보장과 변호인 조력 등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담겼다.

범죄 혐의를 의심받더라도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여러 가지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수사기관에서 억지 자백을 하더라도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북한과의 차이점으로 들면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도록 안내했다.

변호인을 선임할 때는 '처벌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 '가볍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조언도 담겼다. 이들은 대부분 변호사 자격 없이 법률 사무를 취급하거나 알선하는 '브로커'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벌금형을 받은 경우 벌금을 한 번에 내지 않고 나눠서 내는 분납허가신청 방법 등 처벌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들도 나와 있다.

북한의 법률용어 '탐오랑비'는 '횡령', '빌리기계약'은 '임대차계약'에 해당하는 등 남북 간 차이가 있는 법률용어 설명도 나와 있다.

구매한 물건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는 뜻의 북한말 '되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전매'로 표기하며 어떤 일을 완성해주고 이에 대한 보수를 받는 '작업봉사계약'은 '도급계약'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

기관을 지칭하는 용어 역시 북한의 '재판소', '검찰소'는 남한에서 '법원', '검찰청'으로 표기하고, 각각 수사와 재판을 받는 신분을 뜻하는 '피심자', '피소자'는 '피의자', 피고인'으로 바꿔 표기해야 한다.

또 국선변호제도, 각종 법률상담 및 소송지원 등 다양한 사법적 지원제도를 어떻게 이용하면 될지도 자세하게 소개한다.

대표적인 탈북민 소송지원은 전화나 인터넷 예약을 통한 무료법률상담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전화상담을 통해 탈북민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의 변호사를 연결해준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홈페이지에 북한이탈주민전용 사이버상담 코너를 운영하고 있고 방문 예약을 하면 직접 변호사와 만나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소송을 진행한다면 변호사 보수 등 소송비용을 지원받는 법률구조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탈주민등록확인서 등 탈북민 입증 서류를 들고 공단 사무실에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이 책자는 법원 내에서 통일법제와 북한법제를 연구하는 법관들의 모임인 '통일사법정책연구반'이 지난해 6월부터 연구한 결과의 산물이다. 연구반은 북한이탈주민 3명을 비롯해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남북하나재단 전문상담사 등으로 자문단을 꾸려 5차례의 검토회의, 전문가 간담회, 자문·감수를 거쳐 책자를 완성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안내서 3천500부를 전국 법원 민원실과 탈북민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 등에 배포해 탈북민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법정책연구원 하상익 판사는 "법질서가 전혀 다른 북한에서 살다 온 탈북민들은 사법제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안내서를 통해 탈북민들이 사법제도나 재판절차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에서 발간한 안내서인 만큼 정확성이 높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법정책연구원은 2014년 개원 이후 연구원 내 통일사법센터를 중심으로 통일 후 사법질서 통합을 위한 준비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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