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봄날 드리워진 어둠'…고교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

입력 2017-03-13 15:36  

'인생의 봄날 드리워진 어둠'…고교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

양평고 학생·교사·시민 245명이 성금모아 '위안부' 소녀상 조형물 제막

(양평=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아름다웠던 인생의 봄날 드리워진 시대의 어둠/ 이별의 아픔과 두려움 안고서 떠나야 했던 발걸음/…(중략)…놓쳐버린 빛나고 아름다운 당신의 봄날들/ 이제 행복하길 바라겠소 우리 함께 함으로"

1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평고등학교 교정에서 이름 봄 햇살 속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학교 인권동아리 'JR가디언' 회원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 맞춰 가수 김광진의 '편지'를 개사해 부른 곡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국내외 곳곳에 설치되는 가운데 이날 양평고 교정 화단에도 작은 소녀상이 세워졌다.


양평고 소녀상 설립은 2015년 12월 28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계기가 됐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협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학생들이 직접 나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학기 초 인권동아리 학생 전체회의에서 교정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제안이 나왔고 동아리 학생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모금을 운동을 벌였다.

홍보 팸플릿을 만들어 학생과 교사들에게 나눠주고 동아리 활동시간에는 양평역에 나가 거리 홍보전을 펼쳤다. '위안부' 상징 팔찌를 제작해 판매하고 교내 인권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렇게 모은 성금이 370여만원으로 교사와 학생, 시민 등 모두 245명이 후원자로 참여했다.

우연히도 국내 '위안부' 피해자는 정부에 공식 등록된 238명에다 대일항쟁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한 7명(사망자)을 합치면 모두 245명이다.

높이 107㎝의 소녀상은 화강암 포천석 하단에 소녀상 형상의 청동 작품을 세워 제작했다. 좌대에는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영원히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역사"라는 취지문과 함께 후원자 245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중에는 생후 한 달 된 한 교사의 아들 이름도 있다.

부족한 비용으로 자비를 보태 제작한 수박(박용수) 작가는 "올곧게 서 있는 위안부 소녀상과 돌 위의 나비를 통해 소녀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표현했다"며 "좌대 바닥에 드리워진 소녀의 실루엣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해 세월의 고통과 흔적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달 초 전보되기 전까지 인권동아리 지도교사였던 하병수 양평전자과학고 교사는 "학생들이 교과서 속 역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녀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더 깊게 역사를 접하게 되고 이 문제를둘러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JR가디언 회장 주빈(3학년) 학생은 "피해자는 제쳐두고 양국 정부 고위층만 만나서 합의한 것에 대해 다시 되돌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동아리 부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며 "이번 소녀상을 세운 것을 계기로 저희나 후배들이 잊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떠올리고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은 인권동아리 부원 최리(2학년) 학생이 제막식에서 낭독한 '위안부 할머님께 드리는 편지'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한일 위안부 협상을 했을 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중략)…제 나이 때, 혹은 제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으신 할머니들의 아픔이 얼마나 크셨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중략)…저희가 완전히 해결할 수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알리고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할머니들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이런 작은 인식이 모여 언젠가는 큰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전날 밤 울면서 썼다는 편지는 외할머니에게도 하지 않았던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로 끝맺었다.


kt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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