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예보' 부분)
시인 임솔아(30)의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에서 '나'는 자주 둘로 나뉜다. 내가 들여다보는 또다른 나는 자아성찰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희생되고 있는 나다. 자아는 거의 반강제로 분리되지만 덕분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좀더 객관적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괴괴함을 숨긴 채 표준화된 옷차림과 미소로 포장한 사람이 TV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빵 한 개만 주세요./ 나는 집게로 빵을 집는다./ 내 손으로 만든 빵이지만 빵에 손을 대면 안 된다." ('렌트') 시급과 맞먹는 가격의 빵을 만들면서, 내가 만든 빵을 먹고 싶지만 손도 댈 수 없는 비애는 누구나 조금씩 공유하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 내어놓는 나는 "아무나 밟고 지나갔으나 아무리 밟아도 무사해지는"('나를') 나다. 이는 위선이거나 위악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생존본능에 가깝다. 손가락질은 반대쪽을, 구조화된 폭력을 통해 제 이익을 챙기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강변하는 이들을 향해야 한다.
"나의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나는 도시를/ 망가뜨렸다.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더 오래 게임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무래도/ 미안하지가 않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 ('아홉 살' 부분)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아름다움' 부분)
시인은 뒤표지에 "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라고 썼다. 출판계약서에는 양자간 성폭력이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의 성폭력이 지난해 가을 줄줄이 폭로되면서 문지의 '문학권력'이 성추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터였다.
문지 관계자는 "성폭력과 관련한 조치를 명문화한 계약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인의 요구가 있었고 출판사도 필요성을 느꼈다. 관련된 표준 계약서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124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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