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김영호 석좌교수 기탁자료 전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붉은 글씨로 첨삭 지침을 쓴 책인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어정규장전운은 정조의 명령으로 이덕무가 편집한 것을 윤행임, 이가환, 유득공, 박제가 등이 교열해 1796년 펴냈다는 운서(韻書)다. 운서는 한시를 지을 때 필요한 운자(韻字)를 정리한 사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가 기탁한 자료 가운데 어정규장전운을 포함한 고서 28책과 시문·서화·문서 12점을 경기도 성남 연구원내 장서각에서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전시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어정규장전운은 정조가 다산에게 준 책으로, 정약용은 이 책의 상단 여백에 붉은색 글자로 교열에 관한 의견을 적었다.
예컨대 "가경(嘉慶) 병진년(1796) 겨울에 내가 규장각 교서로 있었는데, 임금(정조)께서 몰래 명하시기를 '운서는 책을 펴서 문득 상서롭지 않으면 모름지기 밀어내야 한다'고 하셨다"며 특정 글자를 싣지 않은 연유를 설명했다.
이 문장의 마지막에는 정약용이 임금의 지시를 받아 교열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 용'(臣 鏞)이라는 글자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丁學淵)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과 정학연의 별호(別號)로 추정되는 '열상어옹'(洌上漁翁) 인장 등 5개의 장서인을 통해 다산 가문에서 전해진 수택본(手澤本)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장은 "어정규장전운은 다산과 정조의 관계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며 "다산이 교열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왕에게 바쳐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실장은 이어 "을축년인 1925년 한강에 대홍수가 났을 때 남양주 다산 집 안에 있던 이 책도 젖어서 상태가 좋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정규장전운 외에도 1936년 정인보와 안재홍이 간행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저본이 된 '경세유표'(經世遺表), 다산이 '맹자'(孟子)의 내용 일부를 실용적 입장에서 재해석한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의 고서를 볼 수 있다.
다산의 친필 작품 중에는 '현진자설'(玄眞子說)과 '산재냉화'(山齋冷話)가 눈길을 끈다.
현진자설은 다산이 1814년 3월 14일 제자를 위해 우화의 형식을 빌려 쓴 글이고, 산재냉화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이루고자 했던 다산의 처세관이 담긴 책이다.
이외에도 다산이 그린 산수화를 비롯해 남양주 수종사에 놀러 갔다가 지은 시들을 모은 '유수종사시권'(游水鍾寺詩卷), 정약용이 쓴 시의 초고들을 엮은 '다산유운'(茶山遺韻) 등도 전시에 나온다.
앞서 김영호 석좌교수는 지난 2015년 서책 50종 166책, 시문·서화·문서 5종 23점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했다. 이로써 고(故) 이선근 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 원장이 기증한 자료 26책을 소장하고 있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다산과 그의 제자들이 저술한 원고본의 3분의 2를 관리하게 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전시에 앞서 17일부터 이틀간 다산학의 세계화를 위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국내외 학자들이 다산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한 성과를 발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자는 "정약용은 서양의 학문을 수용해 주자 일변도의 유교사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했다"며 "다산의 학문을 동서양 철학과 비교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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