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각국을 상징하는 주요 건축물과 유적부터 조각, 전통의상, 악기, 인형, 탈, 화폐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세계다문화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만들고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다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후진국의 문화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뜻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말한다. 세계다문화박물관은 우리 머릿속에 그렇게 박혀있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좋은 공간이다. 방문객들은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를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다.
세계다문화박물관은 2007년 서울 마포에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이름도 '다문화박물관'이었다.
김윤태(41) 관장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면 박물관이라는 공간으로 접근하는 좋겠다는 생각에서 박물관을 설립하게 됐다"고 했다.
◇ 다문화 편견 깨는 세계 여행 공간
김 관장은 무슨 이유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박물관을 열 생각을 했을까. 김 관장의 대학 전공은 성악이다. 하지만 이후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어린이를 위한 다문화 서적과 유아용 음악교육 콘텐츠를 보급하는 일을 했다. 학교나 유치원을 찾아가 다른 나라 문화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전통의상과 소품을 하나둘씩 모으게 됐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다른 나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박물관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카페에서 한 아이가 외국인에게 가서 영어로 미국인이냐고 물었어요. 미국인이 아니었던 그 외국인은 불쾌한 표정이었죠. 그런데 아이 엄마는 자기 아이가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더니 외국인이랑 말도 한다며 칭찬만 하는 거예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고 이런 점을 고치고 싶었어요."
박물관에는 세계 각국 전시품 4천여 점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에서 근무한 각국의 대사나 외교관 부인이 기증했다. 개관 1주년 행사 때 아랍에미리트 대사 부인과의 첫 만남 이후 각국 대사관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기증품은 나날이 늘어갔다. 어떤 대사는 본국으로 돌아갈 때 자신이 가진 다양한 물품을 선물로 줬다.
박물관은 소장품이 늘어 2011년 서울 불광동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 인근의 5층 건물로 이전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다. 알음알음 방문객이 많아졌고 지난해 9월에는 민간 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엄마들 사이 입소문 난 체험 박물관 베스트 5'로 선정되기도 했다.
◇ 세계 각국 상징물 한가득
세계다문화박물관은 1층부터 한 층씩 올라가면서 둘러보는 것이 좋다. 1~2층에서는 박물관이 마포에 있을 때 바깥에 있던 각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실내로 들여와 전시한다. 중앙의 대형 트로이목마를 중심으로 몽골의 게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과 진실의 입, 네덜란드 풍차, 인도 타지마할, 러시아 성 바실리 성당, 미국 자유여신상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중국 만리장성과 진시황릉 병마용, 태국의 불탑, 이집트 피라미드 등이 전시돼 있다.
트로이목마는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정면 진열장에는 페르시아 시대의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접시가 있고,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화 '트로이목마'의 영상을 볼 수 있다.
1~2층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이집트를 주제로 하는 장소다. 피라미드 내부처럼 꾸며놓은 공간에서는 파라오와 오벨리스크, 자칼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아누비스, 스핑크스 등을 만날 수 있다. 중국에서 초등학생 키 크기로 제작해 가져온 진시황릉의 병마용도 흥미롭다. 일본, 중국, 터키, 그리스 등 10여 개국에서 수집한 27점의 검(劍)도 볼 수 있다.
3층은 주제별로 꾸며졌다. 베네치아 전시관에는 운하를 따라 운행하던 실제 곤돌라가 놓여 있다.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가면도 진열돼 있다. 세계 각국의 화폐를 모아 놓은 화폐전시관을 비롯해 인형, 의상, 악기, 스노볼, 오르골 등 다양한 주제의 전시관 모두가 빼놓기에는 아까운 공간이다.
◇ 국내 사설 박물관 최초 '비컨' 시스템 사용
세계다문화박물관의 특징으로는 단순히 전시품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방문객이 태블릿PC를 빌려 전시물 앞에 서면 해당 국가에 대한 소개와 조형물·전시품에 대한 안내를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인 비컨(Beacon)을 이용해 스마트 기기가 일정 반경 안에 들어오면 정보가 자동으로 제공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사용한 것은 국내 사설 박물관 가운데는 최초 사례라고 한다.
4층은 문화 체험 공간이다. 아프리카 전통춤과 악기 연주, 터키 벨리댄스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각국 전통의상 400여 벌이 비치돼 직접 입고 춤을 추거나 패션쇼를 할 수 있다. 다른 한쪽 공간에서는 각국 음식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마지막 5층은 기획 전시실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각국 대사가 개인적으로 김 관장에게 선물한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물은 지난해 서울 성북구에서 문을 연 주한대사박물관에 있던 것을 임시로 옮겨온 것이다. 김 관장은 각국 대사가 선물한 물건을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있게 전시공간을 새로 마련할 계획이다.
세계다문화박물관에는 영어권 국가 전시물이 별로 없고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문화가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권 국가 문화를 평소 많이 접하고 여행도 많이 가기 때문에 굳이 박물관에서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김 관장의 판단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할 때 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의도적으로 비영어권 국가 위주로 전시물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 개관 10주년 맞이 기념행사 풍성
세계다문화박물관은 매년 다문화가정 결혼식을 연다. 50~100쌍이 하는 합동결혼식 형태가 아니라 두 쌍만을 위한 결혼식이다. 방식도 처음에는 한국식으로 하다가 지난해부터 이주여성 국가의 전통 혼례로 진행한다.
"일생 한 번뿐인 날에 여러 신부와 함께 입장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신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일반 결혼식과 다르지 않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부 나라의 전통 혼례를 하는 것은 모국에 있는 가족에게 '한국이 딸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입니다."
오는 6월에 진행하는 여섯 번째 결혼식은 필리핀 전통 혼례로 치러질 예정이다.
세계다문화박물관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주한 대사 부인 초청 행사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은평구민 입장료 50% 할인 이벤트, 주한 대사 부인 기증품 전시회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4월에는 아일랜드와 필리핀의 춤과 음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 관장은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하듯 즐겁게 돌아보고, 이곳 방문이 편견 없이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박물관 탐방]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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