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식(食)에서 찾은 삶의 근원

입력 2017-03-14 11:43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식(食)에서 찾은 삶의 근원

일본 작가 헨미 요, 논픽션 '먹는 인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소설 '자동기상장치로'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카와 상을 받은 작가 헨미 요(邊見庸. 73)는 은퇴 전 일본의 뉴스통신사인 교도통신의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중 세상을 신문에 실리는 기사 몇 줄로 해석하는 일에 염증을 느꼈다.

세상을 냉정하고 재빠르게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일상에 지친 그는 건조한 기사에는 없는 '보이지 않는 모습',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 1992년부터 2년간 여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는가, 하루하루 음식을 먹는 당연한 행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먹는 행위를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어떤 변화가 싹트고 있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 분쟁은 먹는다는 행위를 어떻게 짓누르고 있을까.

헨미 요는 사람들이 음식을 씹고 쩝쩝거리는 풍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신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인간들의 다양한 드라마를 '먹는 인간'(메멘토출판사 펴냄)에 담았다.

첫 여행지는 방글라데시였다. 방글라데시 서부 로힝야족 난민촌에서는 주민과 난민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난 온 소수민족이다. 같은 이슬람교도라는 동질감으로 처음에 난민들을 친절히 대해줬던 주민들은 난민들이 구호단체로부터 지원받는 식자재에 질투를 느낀다. 주민들은 요리에 필요한 장작을 비싼 값에 식자재와 교환하고 식자재를 아끼려는 난민들은 땔감을 위해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 간다. 식량을 둘러싼 질투는 주민과 난민을 멀어지게 했고 갈등의 원인이 됐다.

폴란드에서는 공산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인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2014년 사망)를 만난다. 야루젤스키는 오랜 군 생활 탓에 '재빨리 음식을 먹는 사람'이 됐다. 그에게 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은 그는 마치 죄를 고백하듯이 와플의 맛을 알게 됐다고 머뭇머뭇 털어놓는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찾았을 당시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 분쟁이 한창일 때였다. 난민 무료급식소에서는 이슬람교도 여성이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먹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독일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한국이다.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 유생들의 음식 철학과 식사 예절을 배우고,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 프로야구 2군 선수를 만난 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간다.

당시는 위안부 할머니 3명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살기도를 했을 때다. 할머니들을 만난 그는 그저 '그러지 말라'(자살하지 말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인 저자에게 '사과하라'며 울부짖던 할머니들은 저자와 함께 밥을 먹으며 조금씩 끔찍했던 생활 중 맛의 기억을 떠올린다.

저자는 맛의 기억을 담은 개인사를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날카롭던 할머니들의 눈매가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참함과 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세세하게는 역시 자기 자신만의 것"(337쪽)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밥을 먹고 난 할머니들에게는 다시 50년 전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저자는 이런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몸속 깊이 둥지를 튼 '일본'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몇 년이 흘러도,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아픔의 둥지 같은 그 '일본'은 무엇일까?"를 되묻는다.

결국, 반복되는 저자의 애원에 할머니들은 '죽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저자는 '50년이 지나 칼로써 그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했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을 울면서 꼭 잡는다.

박성민 옮김. 364쪽. 1만6천원.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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