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손을 잡은 미국과 이란의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에 이라크가 내심 불안해 하고 있다. 양국이 당장은 공개적 갈등을 자제하지만 IS 퇴치 후 대립이 재연될 경우, 이라크로선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S 격퇴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이란의 팽창을 공세적으로 저지하려 할 경우, 미국과 이란의 이해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IS를 상대로 한 파멸적 전쟁에서 겨우 벗어난 이라크가 가장 중요한 협력국인 미국과 이란의 분쟁에 휘말려드는 상황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신문은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에서 충돌할 경우, 중동 전역으로 파장이 번져 새로운 유혈사태를 촉발할 잠재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쿠르드계 지도자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10여년 간 이라크 외무장관을 지낸 호샤르 지바리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의리를 지켜야 하는 이라크로선 밸런스를 찾는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이란은 친이란계 정치인들이 내각을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중앙정부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2014년 IS가 발호하기 시작하면서 존재감이 커진 시아파 무장단체에 대한 영향력은 더 확고하다.
이라크 수니파 지역인 안바르주(州) 출신 의회 의원 하미드 무틀라크는 "이란이 (이라크를) 100% 통제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손쉬운 선물로 이란에 넘겨줬고, 이란은 현 상황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실수를 바로 잡으려 든다면 미국과 이란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자치지역과 특히 그 동부 절반 지역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마찰이 재연된다면 이라크 못지않게 쿠르드 지역의 안정도 위협받게 된다.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수반의 비서실장인 푸아드 후세인은 WSJ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신을 미국의 우방으로 생각한다"며 "따라서 우방과 이웃 국가 틈에 끼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정부가 2011년 미군을 철수하면서 미국의 이라크 내 영향력은 약화했지만 IS의 세력이 확장하던 2014년 이후로는 미국의 역할이 점차 증가했다. 미국은 5천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 IS 격퇴전을 지원했고, IS 최대 거점이었던 모술의 4분의 3을 탈환하는데 기여했다.
쿠르드자치지역 수도 아르빌의 중동연구소 들라와르 알라알딘 소장은 "지금은 공동의 적인 IS가 미국과 이란 사이 긴장을 가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IS 패퇴 후에는 긴장이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아바디 총리와 통화에서 이란이 이라크를 빠르게 차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과 이라크가 강력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다짐했다.
WSJ는 미군이 모술 탈환 이후에도 이라크에 남을지, 얼마나 오래 주둔할지 등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라크에서 정치적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란 수도 테헤란의 싱크탱크인 전략연구소 하산 아흐마디안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이란의 주관심은 이라크의 안정"이라며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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