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15분·취재진 최소화·DMZ에서 메시지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첫 한국 방문에서 언론을 '기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틸러슨 장관은 17일 오전 10시10분께 도쿄발 전용기로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블랙호크(UH-60) 헬기를 타고 곧바로 DMZ(비무장지대)로 향했다.
틸러슨 장관은 DMZ 방문 이후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예방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 두 장관은 회견을 마친 뒤 회담에 들어가며, 회담 결과는 외교부 측에서 추후 설명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기자회견은 회담 이후 결과를 소개하는 취지로 마련되는데, 이번에는 회담에 앞서 열린다. 이에 대해 틸러슨 장관이 민감한 질문을 가급적 피하려고 이런 일정을 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회견 시간도 회담 일정상 약 15분으로 제한돼 미국 트럼프 행정부 초대 외교 사령탑인 틸러슨 장관의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듣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틸러슨 장관은 당초 기자회견 개최 자체를 부담스러워했으나, 우리 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조율 과정에서 회담 성과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대내외에 과시(홍보)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며 "(지난달) 한미 국방장관 공동기자회견도 회담 전에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틸러슨 장관은 DMZ·판문점 방문 일정과 관련해서도 취재진을 소규모로 꾸렸으며, 현장에서 대북 성명이나 메시지를 내놓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분단의 아픔과 남북 대립을 상징하는 이들 장소에서 중요한 발언을 내놓은 전례를 고려하면, 다소 소극적인 행보로 보인다.
사실 틸러슨 장관의 '언론 기피'는 이미 유명하다.
석유회사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시절부터 언론과 접촉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틸러슨은 지난달 초 국무장관 취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나 회견 등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한국-중국 순서로 이어지는 이번 동북아 순방에 관례를 깨고 보수성향 온란인 매체 기자 1명만을 전용기에 동석시키면서 미국 주류 언론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난달 16일 독일 본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열린 윤병세 장관과의 첫 회담 당시에도 틸러슨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언론의 취재를 허용하는 '모두발언 세션'을 갖지 않았다.
틸러슨을 접해본 외교 소식통들은 틸러슨의 이런 모습은 사업가 시절부터 밖으로 상황을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일을 성사시켜온 그의 '업무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평했다.
미국 주류 언론과 '가짜 뉴스'(fake news) 논란 등을 둘러싸고 연일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세계 최강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장관으로서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론 노출과 메시지 발신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틸러슨 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회담 및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부는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행사 시작 수 시간 전부터 행사장 주변의 위험 물질 여부를 점검하는 한편, 기자회견장 입구에 보안 검색대를 설치하고 취재진의 신분과 소지품을 일일이 확인했다.
hapy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