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무관심·무예산·무정책에 문 닫는 곳 잇따라
"영화는 공공재 관점에서 접근해야"…예산 지원·자생 노력 병행 지적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박정헌 기자 = 지역 예술영화전용관들이 사람들의 무관심과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부족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감상은 이미 보편적인 문화 활동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다양한 영화 상영을 통한 시민문화권 확보, 지역 문화 역량 강화·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일 중독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인들은 여가 문화가 다양하질 못하다. 그나마 영화감상은 서민들까지도 힐링을 하고 생활 속에서 위로를 받는 분야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부분 상업영화로 제작돼 멀티플랙스에서 상영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장르나 내용, 제작 국가 등 면에서 다양성이 보장되는 양화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그러나 영상문화에 대한 중앙·지역 정부의 낮은 이해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독과점, 예산 부족 등 문제로 지역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자체의 실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 창원시 창동예술촌에 위치한 '씨네아트 리좀'(이하 리좀)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5년 12월 23일 문을 연 리좀은 인구 330만 경남지역에서 유일한 예술영화관이다.
총 1관 51석 규모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윤가은 감독영화 '우리들' 등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을 잇달아 상영해 예술영화 관람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개관 1년 3개월 동안 총 1만5천여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다. 월평균 1천여명 수준이다.
1년에 평균 200여편의 소규모 예술 영화를 상영해 매월 6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러나 임대료 등 이런저런 운영비를 빼면 현재 적자만 월 400여만원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리좀은 2016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영진위로부터 프로그램 선정비, 대관료 등 지원금 3천만원을 받아 겨우 명맥을 이어왔으나 올해엔 지원금이 끊겨 '보릿고개'를 겪는 실정이다.
서울 중구에서 10년간 명맥을 유지해오던 독립영화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은 지난해 5월 문을 닫았다.
경남 거제시 '거제아트시네마'는 작년 12월 상영을 중단했다.
서울 종로구 '씨네코드 선재'는 재작년 폐관했고 강원도 유일의 독립영화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지난해 1월 휴관에 돌입한 뒤 재개관 작업 중이다.
이들 극장은 모두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폐관 결정을 한 곳들이다.
현재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이들도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사명감에 적자를 감내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서울 예술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 중인 영화사 '백두대간'의 최낙용 부사장은 "우리 극장은 연간 관객 10만여명 규모로 나름 사람들이 꽤 찾는 곳임에도 안정적인 흑자구조로 전환하지 못했다"며 "예술영화관은 기본적으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만 보면 어리석은 사람들만 있는 분야"라고 자조했다.
영진위에 따르면 이와 같은 예술영화전용관은 전국 총 56개다.
영진위는 2015년부터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을 실시했다.
영진위가 선정한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조건으로 극장마다 3천∼5천만원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그러나 '극장의 자율적 작품 선정을 부정한 사전 검열'이라는 영화계 반발에 부닥쳐 올해는 실시되지 못했다.
리좀이 받은 지원금도 바로 이 정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영진위 관계자는 "영화계 쪽에서 사업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해 아직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늦어도 4월 중순까지 공고를 내고 신청을 받아 사업에 차질이 없게끔 하겠다"고 설명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지방, 서울 가릴 것 없이 예술영화관은 하나같이 경영이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영진위가 아닌 각 지자체에서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 통계를 살펴봐도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관객 저변은 척박한 것을 알 수 있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독립·예술영화 관람객은 814만2천여명으로 전체 영화 관람객 2억1천700만여명의 3.8%에 불과하다.
관객 100명 중 3∼4명만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를 찾는 셈이다.
독립·예술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다고 답한 관객도 2010년 40.8%에서 2015년 24.7%로 곤두박질쳤다.
관객들은 독립·예술영화 관람 시 불편한 점으로 홍보 부족(24.8%), 상영관 부재(20.2%), 짧은 상영 기간(10.7%) 등을 꼽았다.
예술영화를 보고 싶어도 어떤 영화가 어디에서 상영되는지 알 수 없으니 자연스레 그런 영화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리좀의 경우 변변한 홈페이지도 없어 SNS에 의존해 작품과 상영시간을 홍보하고 있다.
결국 '평소 가는 사람만 찾는' 극장이 되면서 점점 시민들과 멀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타파하려면 지자체 차원의 지원은 물론 영화관 자체도 경쟁력을 기를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 '영화의 전당' 같은 경우 부산시가 매년 영화관 전체 예산 약 1백억원 중 70∼80%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는 시가 영화도시를 표방하며 예술영화극장을 일종의 공공문화시설로 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에 가능한 구조다.
덕분에 이곳에서 예술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 수도 매년 7만∼8만명을 웃돈다.
부산만큼은 아니더라도 각 지자체가 영상 관련 조례를 제정해 예술영화관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전국 지자체 중 영상 및 영상산업 관련 진흥조례가 지정된 곳은 광역단체의 경우 부산, 인천 등 6곳, 기초단체의 경우 고양, 전주 등 5곳에 불과하다.
창원의 경우처럼 대다수 지자체는 관련 조례 제정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경남대학교 안차수 교수는 "통합 창원시가 광역시를 준비하는데 기본적으로 광역시 혹은 세계적인 도시는 문화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며 "광역시 위상을 떨친다는 것은 인구가 많고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최낙용 부사장은 정부 지원과 예술영화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영상정책은 '시혜적 성격'이었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영상정책은 '통제'에 가까웠다"며 "둘 다 올바른 방법이라 할 수 없으며 영화산업을 수익이 아닌 '다양성'과 '공공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관 운영을 관객과 함께 하며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자체적 노력도 필요하다"며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영화를 누군가 보려할 때 볼 수 있다면 문화적으로 풍부한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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