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7일 한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한 후 곧바로 비무장지대(DMZ)로 향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초대 외교 사령탑이 첫 방한에서 남북 군사 대치의 상징적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가 있는 캠프 보니파스에 들러 장병들을 격려했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틸러슨 장관이 별도의 대북 성명이나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해 무언의 '경고'를 날렸다는 해석을 낳았다.
틸러슨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은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포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형태의 모든 조치를 모색하고,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던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와 달리 강력한 대북 압박 기조로 북한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 북핵 동결을 위한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그간 미국 조야 일각에선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를 막기 위해 핵 동결 협상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는 틸러슨 장관이 전날 일본에서 내놓은 메시지에도 함축돼 있다. 그는 일본 외무상과 회담한 후 "지난 20년간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며 외교나 다른 부분에서 노력해왔지만 실패한 접근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한 20년'에 "북한이 다른 길을 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미국이 13억5천만 달러(약 1조5천271억 원)를 제공한 기간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13억5천만 달러는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의 이행 과정에서 실행된 대북 중유 제공과 식량 지원 등을 망라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의 대북 강경 발언과 유사한 언급은 최근 트럼프 정부의 다른 당국자 입에서도 나왔다. 마크 토너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16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전화통화에서 "6자회담과 같은 기제가 오랫동안 의도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최근 제안한 6자회담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이날 CNN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6자회담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압박 기조는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북한의 태도 변화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은 최근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틸러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군사적 갈등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만일 북한이 한국과 (주한)미군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긴밀한 한미 협력과 소통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내심을 갖고 대북 상황관리에도 빈틈없이 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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