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훈 순천향대 교수, 한국여성사학회서 주제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명나라 영락제(재위 1402∼1424)때 중국으로 건너가 후궁이 된 조선 여성인 현비 권씨(賢妃 權氏, 1391∼1410)가 양국이 안정적이고 빈번한 교류를 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중관계사를 전공한 임상훈 순천향대 중국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숙명여대에서 열린 한국여성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대명황제의 조선인 총비(寵妃), 권현비'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조선시대 초기 대명 관계의 변화와 현비 권씨가 양국 외교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명문가의 규수였던 현비 권씨는 영락제의 총애를 받아 정일품에 해당하는 현비로 책봉됐고, 조선 여인 중에는 유일하게 명나라 역사서인 '명사'(明史) 후비전(后妃傳)에 이름을 올렸다.
이 논문에서 임 교수는 먼저 현비 권씨가 황실의 궁녀가 된 시대적 배경을 살폈다. 14세기 후반 나란히 건국한 조선과 명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명을 세운 홍무제(주원장)는 태조 이성계에게 임명장인 고명(誥命)을 내리지 않았고, 조선은 정도전을 중심으로 요동을 공략할 준비를 했다.
양국 관계는 각각 세 번째로 권좌에 오른 태종(재위 1400∼1418)과 영락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좋아졌다. 두 사람은 왕과 황제가 되기 전에 만난 적이 있었고, 영락제는 태종에 대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명나라 황제 중에는 드물게 확장 정책을 펼친 영락제는 정화의 원정을 명했고, 몽골을 정복하고자 했다. 영락제는 조선에 무력을 쓰지 않았으나,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악습인 공녀(貢女)를 요구했다.
임 교수는 "조선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던 영락제는 고도의 정치적 수단으로 공녀를 달라고 했다"며 "현비 권씨는 조선 조정이 대대적으로 선발해 1408년 보낸 공녀 5명 중 한 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명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락제는 외모가 수려하고 옥퉁소를 잘 부는 현비를 총애했고, 1407년 세상을 떠난 황후를 대신해 황궁 살림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겼다. 또 현비의 오빠인 권영균에게도 종삼품의 벼슬을 내렸다.
임 교수는 현비의 등장으로 조선과 명을 잇는 육로가 완전히 개방된 점에 특히 주목했다.
그는 "주원장은 고려나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징벌의 의미로 육로를 통한 조공을 금했고, 이로 인해 바다로 조공을 하다 배가 난파하는 사고가 빈발했다"며 "영락제는 현비를 만나러 오는 권영균을 위해 모든 조선 사신에게 육로로 왕래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비는 중국에서 채 2년을 머물지 못했다. 현비가 죽고 4년이 흐른 뒤 그녀가 또 다른 조선 공녀에 의해 독살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락제는 관련자 2천800여 명을 처형했다. 하지만 독살설은 훗날 허구로 밝혀졌다.
임 교수는 "우리의 여성을 중국에 바치는 공녀는 역사의 암울한 일면임이 틀림없다"면서도 "갈등과 반목을 반복했던 조선과 명의 관계가 정상궤도에 오르는 데 큰 영향을 끼친 현비 권씨의 삶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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