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의 탐구에 몰두해온 김선욱의 베토벤 리사이틀은 수많은 음악애호가를 공연장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18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김선욱의 리사이틀은 청중의 환호 속에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고 콘서트홀의 객석은 관객으로 꽉 들어찼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비창', '월광', '열정'이 연주된 탓인지 평소 공연장을 자주 찾는 클래식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악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관심도 집중시킨 듯했다.
김선욱은 이미 몇 년 전에 LG아트센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선보이며 베토벤 음악 연구에 헌신해왔고 최근에 내놓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리사이틀에서 김선욱 좀 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작품 해석을 시도했는데, 이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만한 연주였다.
사실 베토벤의 '비창'이나 '월광'처럼 대단히 유명한 작품을 새롭게 연주하는 일은 거장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유명한 곡에 대해 음악애호가들은 작품에 대한 매우 강한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므로 유명 명곡을 연주하며 과감한 시도를 하려면 기존에 이 명곡들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귀를 설득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김선욱의 베토벤 연주에선 때때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월광'이란 부제로 널리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의 1악장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 곡은 음악평론가 렐슈타프가 "달빛 어린 루체른 호수에 뜬 조각배"에 비유하여 '월광'이란 부제를 달게 된 곡이다. 만일 이번 공연에서 김선욱의 연주를 달빛에 비유한다면 그 달빛은 자연적인 달빛이 아니라 인공조명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달빛은 지속적으로 호수를 비추지 않고 비추었다 말았다 하며 깜박이는 듯했는데, 이는 한 마디를 단위로 약간의 휴지부를 두며 프레이징(악상을 구분해 정리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음악의 호흡은 매우 짧게 느껴졌고, 호수의 물결을 나타내는 듯한 8분음표의 지속적인 흐름이 뚝뚝 끊겨서 이 음악이 담고 있는 온화하고 따스한 감성을 마음껏 느끼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됐다.
'비창'이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1악장의 경우, 김선욱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비극적인 정서를 강조하고자 했는지 도입부의 '비창' 주제에서부터 대단히 느린 템포와 묵직한 분위기로 연주를 시작했으며 이 '비창' 주제가 나올 때마다 매번 강조하곤 했다. 비창의 정서를 강조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알겠지만, 주제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소나타형식을 갖춘 1악장 주부의 구조와 발전부 말미의 클라이맥스는 전혀 부각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넘어갔다.
베토벤의 소나타 1악장에 있어 발전부 말미에서 재현부로 넘어가는 부분은 그림이나 건축에 있어 황금분할 지점과 일치할 정도로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며 드라마틱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1악장의 소나타형식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소홀한 그의 베토벤 연주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번 김선욱 리사이틀에서 관객들을 매료시킬만한 요소는 충분히 많았다. '월광' 소나타와 '열정' 소나타 3악장의 휘몰아치는 연주나 김선욱 특유의 꽉 찬 톤이 자아내는 카리스마는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음악의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연주자의 자아가 더욱 강조된 이번 리사이틀에선 베토벤 음악 자체의 감동을 오롯이 느끼기 어려운 순간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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