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저자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업계 피해 상황 집계에도 소극적인데다 중국에 강력한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인 중국과의 외교적 사안이어서 아주 세심하게 다뤄야할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저자세이거나 정권교체기에 복지부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보복 문제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고 말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중이었던 유 보총리는 기자들을 만나 "한한령은 어딘가 실체는 있지만, 법적 실체는 없다"며 "법적 실체가 없는 것을 가지고 국가 간에 얘기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효적인 대응 방안이 없을 뿐 아니라 정부의 업계 피해 상황 파악이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5일에서야 처음으로 면세점, 여행·관광업체, 전자업체 등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피해상황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지난달 말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한 직후 본격적으로 중국 당국과 소비자들의 사드보복이 시작된 지 보름이나 지나서야 겨우 업계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일 중국 국가여유국이 자국 여행사에 한국 여행상품 판매 금지 지시를 내린 이후 중국인 관광객 감소 여부나 관광업계 피해 규모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아직 중국 정부의 지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정확한 입국객 집계가 어렵다'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가 공개되면 중국을 더 자극하지는 않을까 우려해 발표하지 않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공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구두나 문자메시지 등 '비공식적' 수단을 통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처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가 지난해 7월 결정됐고 중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제품의 통관 지연, 롯데의 중국사업장에 대한 일제 소방·위생 점검,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20% 줄이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의 수위 조절을 해 가며 여러 보복성 조치를 해 왔지만, 그동안에도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사업에 진출한 기업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정부의 노골적 보복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이 이 정도로 무기력할 수 있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제 중국에서 피해를 보는 한국 기업은 사실상 어디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특정 국가, 특정 업체의 상당수 사업장을 대상으로 저렇게 노골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단순히 그냥 행정과 규제를 다소 강화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며 "우리 정부가 너무 소극적인 것같다"고 지적했다.
네티즌들도 정부의 저자세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 네티즌은 유일호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사드보복의) 물증이 없다는 경제부총리는 어느 나라 경제부총리인가"라고 반문했고 다른 네티즌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해 "정부는 무슨 일이 터지면 빠르게 대처하는 법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이 중국에서 반한 여론은 도를 넘고 있다.
중국 톈진(天津) 시내의 헬스장 2곳에서는 태극기가 찢긴 채 벽에 내걸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한 전자상가 점원이 50대 교민에게 "나는 중국인이다. 너희 한국인을 경멸한다(看不起)"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지난 14일에는 중국인 여성 왕훙(網紅·중국의 파워블로거)이 자신의 웨이보에 '롯데 놈들이 고기 먹는 것만 좋아하고 주인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하 표현을 쏟아내면서 한국 화장품이나 롯데 상품을 보이콧하자고 선동했다가 관련 게시물을 삭제한 적도 있었다.
아울러 중국 내 롯데마트를 돌면서 식품을 훔쳐먹고 일부러 제품을 훼손하는 영상 100여 개가 중국의 포털에 올라오기도 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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