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정치권, 불법 선거자금 '셀프사면' 추진 논란

입력 2017-03-20 17:15  

브라질 정치권, 불법 선거자금 '셀프사면' 추진 논란

"새 부패명단 공개 임박…"개인치부와 죄질 다르니 분리하자"에 이해일치

"밀림에 불이 나니 짐승들이 단결한다" 비판 여론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한국에서 1980년대 초반 한 공중파 방송의 갑부 실록 드라마 주인공이 입에 달고 산 일본 말 "민나 도로보데스(전부 도둑놈들)"가 사회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 반부패 시위가 거리를 휩쓴 브라질,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에서도 이런 "민나 도로보데스"와 똑같은 현지어가 시위대 사이에서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 3년 동안 사상 최대의 정치권과 재계 부패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브라질에선 지난주 여야를 불문하고 힘깨나 있다는 정치인들 "거의 전부"가 올라 있는 새로운 부패 리스트가 등장했다.

아직 대법원의 허가가 나지 않아서 미공개 상태이지만 곧 명단과 혐의들이 공개되면 "부패에 이골이 난" 브라질 국민조차 충격을 받을 정도라고 브라질 남부지방을 관할하는 검찰 수사팀장 카를로스 리마가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같은 날 "브라질엔 도둑놈들밖에 없다"는 한 은퇴 자동차 페인트공의 반응을 전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지난 10~20년간 정치권력을 조금이라고 가졌던 거의 모든 사람"(가디언, 15일)이 연루된 규모도 규모거니와, 이들이 선거자금을 받은 것은 뇌물, 횡령, 돈세탁 등과 구별해 소급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셀프 사면' 조항을 반부패법에 새로 집어넣으려는 꼼수를 추진하고 있는 대목이다.

브라질의 반 정치부패 단체의 한 관계자가 소개한 "밀림에 불이 나면 (먹고 먹히는 관계인) 짐승들이 단결한다"는 브라질속담처럼, 정치인들이 아웅다웅하는 정치 밀림에 대형 불이 나자 군소 정당들 외에 주요 정당 소속 정치인들 간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사실 브라질 의회는 이미 지난해 9월과 11월 2차례 한밤중에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다른 연루자의 혐의를 진술하면 형량을 경감해주는 협상을 금지하는 등의 법안 처리를 시도하는 등 이미 부패 수사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입법을 추진했으나 분노한 여론에 부닥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 막후 협상에 들어간 것은, 새로운 부패 리스트가 등장하기 직전, 대법원이 건설사로부터 50만 헤알(1억8천만 원)의 선거자금을 받은 정치인을 기소토록 결정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전국의 정치인들이 공황에 빠졌다"고 브라질의 영문 온라인 매체 플러스55(pluss55)는 지난 10일 전했다. 브라질에선 여태껏 선거자금법 위반은 형사처분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이런 관행을 확 바꿔버린 것이다.

이 결정 후 불법 선거자금 모금과 개인 치부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 전 대통령이 온라인 성명을 통해 불법 선거자금도 그릇된 일이지만, 개인 치부와는 죄질이 다르다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더러운 돈을 100% 선거에 사용했다고 증명할 방법이 뭐냐"고 이 매체는 반문했다.

브라질 정계의 실력자 아에시오 네베스도 "페트로브라스(부패 사건에 연루된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과 선거 때문에 수백 달러를 받은 사람을 같이 취급해선 안 된다"며 선거 때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모두 몰아내고 "조국을 구할 어떤 구세주들이 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나? 아니, 정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현지 언론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이들의 논리는 낯익다. 브라질은 지금 전임 대통령의 탄핵 여파와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시름겨워하는 가운데 이제 겨우 경제 회생의 기미가 보이는 만큼 정치안정을 도모하는 게 국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의원들의 셀프 사면 추진에 국민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며, 카를로스 아이레스 브리토 전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을 "헌법 유린"이자 "법치의 부정"이라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저명 경제 논평가 미리암 레이타오는 현지 언론 칼럼에서 "브라질 경제가 다시 성장 길로 들어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치 지도자들과 권력의 특혜를 입은 선택된 기업들 간 문란한 관계를 끊는 싸움을 계속하는 게 그것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정치권의 셀프 사면 추진은 아직 관련법의 공식 발의자 없이 막후에서만 얘기되고 있다. 분노한 여론 때문에 선뜻 법안을 주도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브라질닷컴은 16일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새로운 부패 리스트엔 현 각료 6명과 100명 이상의 여야 의원이 포함됐다. 브라질 검찰이 진행 중인 '세차'라는 이름의 부패 수사 발원지인 페트로브라스의 주계약 회사인 남미 최대 건설사 오데브레시 경영진 77명으로부터 950건의 진술을 확보한 데 따른 성과이다.

오데브레시는 지난해 말 브라질뿐 아니라 미국, 스위스 수사 당국과 협상을 통해 감형 조건으로 부패 혐의와 그 연루자들을 다 불었다. 브라질 의원들이 감형 협상을 막으려는 것도 지난 3년간의 부패 수사가 확대일로를 걸은 데는 이 제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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