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테러 1주년] 끔찍했던 현장은 복구됐지만 상처는 그대로

입력 2017-03-21 05:30   수정 2017-03-21 06:04

[브뤼셀테러 1주년] 끔찍했던 현장은 복구됐지만 상처는 그대로

오렌지 경보·무장군인 순찰·검문검색 강화…'365일 테러 비상'

잇단 테러·음모 적발에 불안 고조…"누구도 못 믿어" 불신 팽배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시내 EU 구역의 슈만역 로터리.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자동소총은 물론 권총까지 허리에 차는 등 완전무장을 한 벨기에 군인 3명이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며 순찰을 하고 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와, EU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 건물 앞에는 금방이라도 전투를 벌일 수 있는 태세를 갖춘 군용 트럭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다는 벨기에 도심의 유명한 관광지인 '그랑 플라스' 광장에서도 경찰의 모습보다 무장한 군인의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슈만역 인근의 말벡 지하철역.

1년 전 브뤼셀 공항과 함께 끔찍했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했던 곳으로 16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사고 현장이 말끔히 복구돼 1년 전 참사의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다.

테러 이전과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잔뜩 긴장한 표정의 얼굴을 한 무장군인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지하철역 플랫폼을 순찰하며 승객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유럽의 심장부를 뒤흔든 1년 전의 끔찍한 테러 사건은 유럽 정치·외교의 중심을 사실상 '병영국가'로 탈바꿈시켰다.





벨기에는 겉으로는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지만 여전히 테러비상사태에 있다.

지난 2015년 1월15일 전체 4단계의 테러대비 태세 가운데 3단계인 오렌지 경보를 발령한 이후 2년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파리 테러 때와 브뤼셀 테러 때는 두 차례 최고단계인 4단계 '적색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브뤼셀 인근 테르뷰렌 시에서 브뤼셀로 매일 출퇴근한다는 40대 직장인 듀퐁씨는 "계속해서 오렌지 경보상태다 보니 이젠 이 상태가 '뉴 노멀'인 것 같다"며 "매일 보는 무장군인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강도높은 테러 경계태세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말벡역 근처 호텔에서 근무한다는 한 30대 여성은 "테러 이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규모가 큰 테러는 없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추종자들로 추정되는 자생적 테러는 브뤼셀뿐만 아니라 벨기에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벨기에 최대 항구도시인 안트워프 철도역 테러공격을 위협하는 동영상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엔 브뤼셀 시내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져 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시민들은 브뤼셀테러 1주년을 4일 앞두고 폭탄테러의 악몽을 떠올렸다. 다행히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사고로 확인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테러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사례다.

테러를 우려한 긴급 대피령도 수시로 이어진다.

지난 2일엔 브뤼셀 시내에서 가스 실린더를 실은 밴 차량이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다가 경찰에 제지를 당했으나 경찰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차량 폭탄테러'를 우려한 경찰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건물과 지하철역에 대피령을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경찰의 테러 음모 적발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밤사이에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는 검찰의 발표는 수시로 나온다.

벨기에의 대테러기구인 '위협평가조정기구(OCAM)'는 최근 "벨기에에 대한 테러 공격위협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벨기에 정부는 그동안 테러 재발을 막기 위한 법과 제도를 대폭 강화한 데 이어 지속해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일례로 현재 벨기에에서는 범죄용의자를 체포한 뒤 24시간 내에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석방해야 하지만 수사 당국은 일반 범죄자의 경우 48시간, 테러 혐의자의 경우 72시간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브뤼셀 공항도 테러 피해복구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테러대책을 강화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브뤼셀 공항 노조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공항의 보안조치가 아직도 개선돼야 한다"면서 "'100% 안전보장'이라는 게 있을 수 없겠지만 (공항 테러대책에는) 확실히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테러에 대한 벨기에인들의 인식도 많이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벨기에 도로안전연구소(BIVV)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벨기에인들은 빈집털이에 이어 두 번째로 테러 위협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테러는 일상생활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BIVV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테러 이후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중이벤트 장소에 덜 자주 가게 되고, 쇼핑센터나 극장과 같은 공공장소를 피하게 되며, 모르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의심하게 됐다고 답변했다.

특히 자신이 사는 곳 반경 15km 이내에서 테러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한 사람이 20%였고, 52%는 테러공격에 대한 해결책이 없으며, 84%는 테러 위협이 일시적인 게 아닐 것이라고 응답했다.

테러로 인한 간접 피해도 막대한 것으로 분석됐다.

벨기에기업연맹은 작년말 보고서에서 테러로 인해 벨기에 경제가 작년 한 해 동안 24억 유로(약 2조9천900억원)의 손실봤다고 평가했다. 이는 벨기에 국내총생산(GDP)의 0.57%에 달하는 것이다.


bings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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