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라스푸틴'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 시대 인물 라스푸틴이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온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최순실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불렀다. 덴마크에서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체포된 뒤 현지 언론들은 정유라를 '한국 라스푸틴의 딸'로 묘사했다. 2007년 미국 대사관은 외교문서에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라스푸틴은 '미친 수도승', 성적으로 난잡했고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 권력을 좌지우지한 인물이란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러시아 연구자인 조지프 푸어만 미국 켄터키주립대 역사학부 석좌교수는 신간 '라스푸틴'(생각의힘 펴냄)에서 그가 처음부터 현대에 알려진 것 같은 '괴승'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책은 라스푸틴의 유년기부터 농부와 설교자로 살았던 청년기를 거쳐 로마노프 왕가와의 관계, 그리고 비참한 최후까지 생애를 따라간다.
라스푸틴은 비록 훗날에 술과 섹스에 탐닉했지만, 처음에는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고 성인과 교부의 책을 읽고 그들의 삶을 흉내 내려 했던 인물이었다.
궁전에 드나들기 시작한 처음 2년 동안에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고 문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혹에 민감했고 특히 보상이 수반되는 유혹에는 아주 민감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영적 위기를 느꼈고 그럴수록 술과 섹스에 더욱 빠져들었다.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무능과 전횡이었다. 이들은 라스푸틴의 부정행위를 합리화했고 그를 고발한 사람들에게 분풀이했다. 증거가 확실한 경우에도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싫은 증거는 무시했다.
비밀경찰 등을 통해 수차례 라스푸틴에 대한 비판과 보고가 황제에게 전해졌다. 그의 폭주를 제지할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차르와 황후는 긍정적인 면만 보려 했고 이를 근거로 라스푸틴에 대한 비판을 물리쳤다.
특히 황후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였다. 라스푸틴이 암살된 이후에도 그는 끝끝내 라스푸틴을 '신을 섬기는 자',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로 믿었다고 한다.
저자는 "라스푸틴은 루머와 전설의 영역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면서 "비록 탐욕과 부패로 막을 내렸지만, 그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만약 라스푸틴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훨씬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병찬 옮김. 396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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