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사랑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사랑은 내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며 이상화하는 행위다.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상대에 대한 이상화는 절정에 달한다. (…) 상대의 장점과 매력을 실제보다 더 키우는 이 투사가 철회되면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때 구름 위에 있던 기분이 땅 위로 안착한다."
연애 좀 해봤다는 사람도 사랑이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물으면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정답이 없으니 답하기가 어렵고, 대답들을 보면 각자 제 가치관을 투영하는 것도 같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라고 했고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현대의 사랑이 속화되어 '판매되고 소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 장석주(62)가 사랑에 대한 정의에 또 하나를 보탰다. 시인은 산문집 '사랑에 대하여'(책읽는 수요일)에서 사랑이 "타인에 대한 특별한 전유(專有)의 방식"이자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몸짓"이라고 말한다. "미지의 무엇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이며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파생 상품"이기도 하다.
신에게 기도하는 대신 연인의 현세적 힘을 믿고 불가능을 극복하고자 한 시대가 있었다. 죽음도 마다치 않는 낭만적 사랑은 현대사회에서도 가능한가. 이성을 만날 자유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자유에서 도피하고 스스로를 제약한다. 오직 긍정적이기만 한 것에는 생동하는 힘이 없다. 현대의 사랑은 절망과 불안, 위험과 모험을 제거한 안전한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사랑에 목숨을 걸던 예전에 견줘 오늘의 사랑은 그 위엄이나 명예를 잃은 채 쪼그라들고 남루해졌다. 그것은 오늘의 사랑이 위험과 모험이 배제되고, 열정과 신비가 휘발된 채 편의점에서 쉽게 사는 소비재 같이 지나치게 가벼워진 탓이다."
'문장노동자'를 자처하는 시인은 플라톤에서 조르조 아감벤까지, 장자부터 칼릴 지브란까지 동서고금에서 사랑을 둘러싸고 수없이 이어져온 탐색전을 관전한다. 작가들이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핵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아가 사랑이 "진리 그 자체이고,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길을 찾고, 이야기는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이야기를 낳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 사랑의 순간은 새로운 이야기가 잉태되는 순간이다." 22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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