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한때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한국산 항만 크레인.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각국 항만은 물론이고 멀리는 남미, 아프리카 시장까지 장악했지만 중국산에 밀려 국내에서조차 사라진 지 10년이 넘는다.
부산항만공사가 국산 항만 크레인의 부활을 추진한다.
새로 짓는 부산신항의 서컨테이너부두와 민자부두에 국산 크레인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2006년에 처음 문을 연 부산신항의 하역장비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운영사들이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국내 기업 제품을 외면하고 중국 제품을 도입한 때문이다.
신항 5개 터미널에 설치된 컨테이너 크레인 67대는 모두 중국업체가 만든 것이고 트랜스퍼 크레인 218대도 대다수 중국 제품이다.
부산신항 1-1단계 개장을 앞둔 2005년 11월 이후 운영사들이 도입한 컨테이너 크레인의 가격은 최고 100억원대에 이른다.
트랜스퍼 크레인 등 다른 하역장비들까지 포함하면 1조원대의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부산신항 개장 당시만 해도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체들이 컨테이너크레인, 트랜스퍼크레인 등 장비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었다.
부산신항을 시작으로 싼 가격을 앞세운 중국 제품이 광양항 등 국내 다른 항만까지 장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업체들은 생산을 포기했다.
항만공사는 수주물량 격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조선업체들을 돕고 국부 유출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2021년께부터 개장할 예정인 5개 선석 규모의 신항 서컨테이너부두와 2개 선석 규모의 피더부두에 국산 항만 크레인을 도입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민자로 짓는 3개 선석 규모의 2-4단계 부두까지 합치면 하역장비 도입 비용이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항만공사는 23일 밝혔다.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크레인 등 하역장비를 갖추려면 선석당 800억~900억원이 든다.
항만공사는 서컨테이너부두의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대로 하역장비 도입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국산과 중국산 크레인의 가격 차가 거의 없어진 것도 국산 항만 크레인 도입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항 개장 초기만 하더라도 중국산이 국산보다 30% 이상 쌌지만 현재는 비슷하거나 가격 차가 5% 정도에 불과하다.
항만크레인은 한번 설치하면 길게는 20년 넘게 쓰기 때문에 고장이 났을 때 수리의 신속성과 부품가격 등을 고려하면 국산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항만공사는 설명했다.
하지만 국산 크레인이 부활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10년 이상 생산을 중단한 탓에 흩어진 전문인력들을 다시 모아야 하고 관련 설비도 재정비해야 한다.
생산 조직을 재건한다고 해도 생산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몇몇 조선소가 항만공사의 국산 하역장비 도입에 호응해 생산을 재개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과 생산설비 재정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항만공사는 부산신항에 앞으로 컨테이너부두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고 광양, 울산, 인천 등 국내 다른 항만의 장비 대체 수요도 있어 조선소들이 생산시설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아가 중국산을 능가하는 성능을 갖춘 장비를 개발하면 잃었던 세계 시장에 다시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항만공사의 계획이 실현되면 국산 항만 크레인이 20년 가까운 공백을 딛고 부활해 다시 부산항에 등장하게 된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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