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도 3년 동안 챌린지 투어에서 절치부심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매치 플레이는 단 64명만 출전한다.
이 대회는 돈 잔치나 다름없다. 총상금 975만 달러(약 109억4천340만 원)에 우승 상금이 무려 166만 달러(약 18억6천318만 원)에 이른다. 준우승 상금이 104만5천 달러(약 12억2천859만 원)이다.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가리는 16강에 오르기만 하면 15만8천 달러(약 1억7천727만 원)의 보장된다.
꼴찌를 해도 4만8천 달러(약 5천385만 원)를 받는다. 첫 경기에서 기권한 제이슨 데이(호주)도 4만8천 달러를 받는다.
프로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출전하고 싶은 꿈의 무대다.
하지만 출전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출전 자격은 세계랭킹 순으로 부여한다. 세계랭킹 64위 이내 선수가 출전을 포기하면 64위 밖 선수에게 출전권이 돌아간다.
세계랭킹 70위 토니 피나우(미국)는 대회 개막 전날까지 대회장에서 연습하면서 빈자리가 생기길 기다렸지만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런 특급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면 골프 선수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한 인생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있다.
골프위크는 델 매치 플레이에 출전한 64명 가운데 상당수가 유럽프로골프 2부 투어인 챌린지 투어에서 고난을 견디고 꿈의 무대에 입성한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세계랭킹 11위 알렉스 노렌(스웨덴), 14위 티럴 해턴(잉글랜드), 24위 브룩스 켑카(미국), 26위 라파엘 카브레라 베요(스페인), 33위 토미 플릿우드(잉글랜드), 46위 마르틴 카이머(독일), 그리고 안병훈(26)이 챌린지 투어 출신이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첫 경기에서 꺾은 쇠렌 키옐센(덴마크)도 챌린지 투어를 거쳤다.
챌린지 투어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와 비슷하지만, 상금 규모와 선수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연간 20개 차례 열리는 대회 장소는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아메리카 대륙을 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선수들은 날씨와 음식, 코스 여건이 제각각인 대회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 거리도 엄청나다.
총상금이라야 20만 유로(약 2억4천만 원) 안팎이다. 상위권에 입상해도 출전 경비를 대기에 빠듯하다.
챌린지 투어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골프투어라는 악명이 붙었다.
챌린지 투어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선수들은 더 큰 무대로 나가겠다는 꿈이 아니면 버티지 못한다.
챌린지 투어 시즌 상금 15위 이내에 들면 이듬해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뛸 자격을 받는다.
그리고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몇 차례 우승을 해야 델 매치 플레이 같은 특급 대회에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노렌은 카이머와 챌린지 투어 동기생이다. 2006년 챌린지 투어에서 노렌은 상금랭킹 3위, 카이머는 4위를 차지해 이듬해 유럽프로골프투어에 입성했다.
카이머는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뛰면서 2010년 PGA챔피언십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했고 2014년 US오픈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노렌은 카이머만큼 출세하지 못했지만 유럽투어에서 통산 8승을 올렸다. 노렌은 지난해에만 3승을 쓸어담아 한때 세계랭킹 9위까지 올라갔다.
해턴은 2012년 챌린지 투어 상금랭킹 10위로 졸업했다. 지난해 알프레드 던힐 링크스 챔피언십 우승과 디오픈 공동5위, 그리고 PGA챔피언십 공동10위에 올라 세계랭킹이 급상승했다.
지난 1월 더스틴 존슨(미국)을 2위로 밀어내고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플릿우드는 2011년 챌린지 투어 상금왕 출신이다.
켑카는 미국 선수로는 드물게 챌린지 투어를 거친 이색 경력을 지녔다.
대개 미국 선수는 웹닷컴투어를 선호하지만 켑카는 챌린지 투어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013년 챌린지 투어에서 3승을 거둔 켑카는 곧바로 유럽프로골프투어로 직행하는 특혜를 누렸다.
그는 초청 선수로 출전한 PGA투어 대회에서 여러번 상위권에 입상한 덕에 수월하게 PGA투어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2015년 피닉스오픈에서 PGA투어 첫 우승을 거뒀다.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보낸 안병훈 역시 챌린지 투어에서 역경을 보약 삼아 PGA투어에 진출했다.
2011년 챌린지 투어에 뛰어든 안병훈은 3년 동안 악전고투 끝에 2014년 상금랭킹 3위에 올라 이듬해 유럽프로골프투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안병훈도 켑카처럼 유럽투어 상위 랭커에게 주어진 PGA투어 대회 출전 기회를 잘 살려 미국에 진출했다.
델 매치 플레이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세계랭킹 5위 헨리크 스텐손(스웨덴)도 챌린지 투어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2000년 챌린지 투어 상금왕이다.
챌린지 투어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냈다고 다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1998년 챌린지 투어 상금왕 워런 베넷(잉글랜드)은 선수로 빛은 보지 못하다 캐디로 변신해 뉴스가 됐다.
2005년 챌린지 투어 상금왕 마크 필킹턴(웨일스)은 골프 선수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일찌감치 은퇴했다.
2012년 챌린지 투어 상금 1위를 차지해 이듬해 유럽투어에 등장한 엡손 코브스테드(노르웨이)는 이듬해 상금랭킹 135위에 그쳐 챌린지 투어로 돌아가 아직도 거기서 뛰고 있다.
챌린지 투어 2017년 첫 대회 바클레이스 케냐 오픈은 델 매치 플레이가 한창인 23일 개막했다. 대회 장소는 동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무타이가골프장이다.
다음 대회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다. 그리고 포르투갈, 스페인, 체코로 이어진다. 하반기가 되면 카자흐스탄, 중국,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에서도 대회가 치러진다.
고단한 일정이지만 특급 무대에 반드시 서겠다는 의욕에 불타는 청춘들로 챌린지 투어는 북적인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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