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태정관 지령'등 독도영유권 주장에 불리 내용삭제 '꼼수'
위안부문제 '모두해결' 강조…'보상논의 중'→'합의성립'으로 바꿔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김병규 특파원 = 24일 발표된 새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은 2014년 실시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이 반영돼 지리·현대사회·정치경제·일본사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 관련 내용이 기술된 것이 특징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사와 정치경제 교과서 7종서 검정 기준에도 없는 '한일 위안부합의' 내용이 실렸고, 그와 관련해 역사적 교훈이나 인권 문제 등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잘못된 표현을 한 곳도 여럿 있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사회과 교과서는 모두 24종으로, 검정 대상이던 기존 교과서 중 극우 성향 메이세이샤(明成社)의 일본사B는 검정 신청을 하지 않아 내년부터는 교실에서 퇴출된다. 채택률이 낮아 출판사측이 검정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 '독도는 일본땅' 주장에 불리 내용삭제…日문부과학성 집요한 왜곡 시도
일본 정부는 태정관(太政官·다조칸) 지령이나 일본의 군사적 필요에 의한 독도편입 등 '독도는 일본땅' 주장에 불리한 내용은 삭제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독도(일본명 다케시마·竹島)를 설명할 때에는 그 앞에 "일본의 고유 영토인"이라는 표현을 꼭 넣도록 했다.
진보성향인 짓쿄(實敎)출판은 일본사B 검정신청을 하면서 "현재의 다케시마에 해당하는 섬에 대해, 일본 정부는 1877년 일본과 관계없는 섬이라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새로 넣었다.
이 출판사는 2013년 검정 통과 때에는 독도 관련 내용은 아예 넣지 않았으나, 2014년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가 개정돼 독도관련 기술을 사실상 강제하자 이번에 관련 표현을 삽입했다.
눈에 띄는 것은 태정관 지령에 관한 서술이다. 이는 일본 메이지(明治)시대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이 독도와 울릉도를 조사한 뒤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와 관계가 없다"고 내무성과 시마네 현에 지시한 공문서다.
1877년의 일본 정부 판단은 일본이 당시 독도를 조선 영토로 공식 인정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지만, 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과 함께 관련 내용을 통째로 들어냈다.
짓쿄출판은 검정을 신청할 때 "일본 정부가 일로(日露)전쟁의 군사적 필요성 등에서 1905년 1월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의 관할로 한다고 결정했다"는 내용도 넣었으나, 검정 과정에서 "군사적 필요성" 언급이 빠졌다. 러시아-일본 전쟁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는 것 자체가 '독도는 일본땅' 주장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에 문부과학성은 "일본이 국제법상 정당한 근거에 기초해 정식으로 영토로 편입한 것으로 수정하라"고 지적했고 이를 "일로전쟁 중인 1905년 1월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의 관할로 한다고 결정했다"고 바꾸도록 했다.
이날 검정 결과가 발표된 24종 교과서 중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기술 강제 대상이 아닌 세계사를 제외하고 21종 교과서는 100% 독도를 일본 정부 입맛대로 기술했다. 세계사를 포함하면 87.5%가 독도에 대해 기술한 셈이다.
지리 교과서의 경우 3종 중 2종이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썼고 1종은 점거했다고 적었다. 모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을 썼다.
시미즈(淸水)서원의 지리 교과서의 경우 현재는 독도 문제에 대해 "시마네현에 속하는 다케시마에는 한국과의 영유권 문제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새 교과서에는 "시마네현에 속한 다케시마도 일본 고유의 영토이지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이 섬을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영유권 주장이 대폭 강화됐다.
일본사 교과서 역시 8종 모두 "1905년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 표현을 담았다.
정치경제(7종)와 현대사회(1종) 등 8종 교과서는 모두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이 넣었고, 6종에는 "한국의 (불법) 점거"를 기술했다. 정치경제 7종 중 6종이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평화적 해결을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부과학성은 특히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에 대해 집착했다. 독도를 러시아와 분쟁 중인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중국과 영토 갈등이 있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와 묶어 고유의 영토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미즈서원의 정치경제 교과서는 검정 신청본에서는 "시마네현에 속하는 다케시마에 대해 한국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적었지만 검정 과정에서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다케시마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을 추가하고 "한국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더한 뒤에야 합격 도장을 받았다.
◇ 2015년 위안부 한일합의, 벌써 교과서에 등장
이번 검정에선 사회과 중 지리를 제외한 21종 가운데 13종(61.9%)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했다. 역사교과서(세계사, 일본사) 13종 중 9종(69%), 정치경제 교과서 7종 중 4종(57%)에 위안부 관련 기술이 포함됐다.
그와 관련한 2015년말 한일 합의를 추가로 반영한 교과서는 일본사B 4종, 정치경제 3종 등 모두 7종이다. 이 중 3종은 비교적 합의 내용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4종은 합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 부분을 강조했다.
짓교출판의 일본사B 교과서는 "합의내용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기술하며 "윤병세 장관이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을 표명하고 재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고 적었다.
이 중 4종은 일본 정부가 자금을 출연하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문제가 여전히 안고 있는 외교적 분쟁은 물론 인권 차원의 시사점, 역사적 교훈 등을 축소할 여지가 다분하다.
또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아 일본 미래 세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시미즈서원의 일본사B 교과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은 책임을 인정하여 한국이 설립하는 재단에 10억엔을 거출할 것을 표명했다'고 서술했고, 도쿄서적의 정치경제는 '…일본 정부가 자금을 거출하는 것 등에 의해 양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적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했음을 기술한 교과서는 3종이었고, 한국 사회와 피해자 등의 반발을 설명한 교과서는 2종이었다.
짓쿄출판의 일본사B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낸 문제로, 책임을 통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술 내용이 이전보다 일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 교과서도 있었다.
도쿄서적의 일본사B는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군의 관여가 명확해져 1992년 미야자와 총리 방한 시 보상을 대신한 무언가의 조치 검토를 약속했다'는 부분이 삭제됐다.
또한, 시즈미서원의 정치경제에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개인보상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되고 있다'는 내용 등이 삭제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도 성립했다'는 내용이 새롭게 들어갔다.
짓쿄출판의 정치경제에선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의 대응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부분이 삭제되고 영토를 둘러싼 문제와 '일본의 영역과 배타적 경제 수역 지도'가 새로 포함됐다.
이와는 별개로 기술 내용이 일부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 교과서도 있었다. 짓쿄출판의 일본사A는 '수많은 여성이 일본군 병사의 성 상대를'이란 내용을 '수많은 여성이 일본군의 관리 하에서 병사의 성 상대를'이라고 변경했다.
jsk@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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