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통과 실패 시 정치위기…이전 행적처럼 불안 자극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다음달 16일 터키에서 열리는 개헌 국민투표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총력을 기울이고도 개헌에 실패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 생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WSJ는 터키 현지에선 개헌 반대를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분위기지만 정작 여론조사를 보면 중간 계층에서 찬반 여론이 극명히 나뉘어 국민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터키 곳곳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개헌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도록 독려하는 내용의 선전판이 내걸렸다. 방송에선 공무원들이 나와 개헌 반대 세력을 배신자나 테러리스트 지지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개헌 투표에 반대하자는 의견을 찾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분위기에도 개헌 찬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를 확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 내부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나오는 등 터키 정치의 전통인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는 이번 개헌에 일반 유권자들도 찬성표 행사를 망설이고 있어서다.
AKP는 당연히 국민투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야신 악타이 AKP 대표는 "과반수 확보를 확신한다"며 "반대하는 쪽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독재하려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흐멧 다부토글루 전 총리의 고문을 역임한 에티엔 마흐주피안 정치 컨설턴트는 "정부가 '찬성' 분위기를 조성해 많은 사람이 '반대'표를 행사할 계획이라고 말하길 두려워한다. 그렇다 보니 여론조사원한테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제2야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의 경우 개헌안을 지지했으나 정작 이 정당 소속 유권자의 71.5%가 개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과 제3야당인 인민민주당(HDP) 유권자의 반대 의사도 90% 안팎에 달했다.
만약 이번 국민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한다면 2002년 정권을 잡은 이래 최대 시련인 것은 물론 마법에 가까운 무적을 자랑하던 그의 명성에도 금이 갈 전망이다.
세즈긴 탄리쿨루 CHP 의원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AKP가 과반 확보에 실패한다면 "AKP도, 터키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로 여기는 동시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일한 회원국인 터키의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는 국민투표가 부결된 다른 국가도 이미 겪은 현상이다.
지난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국민이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희망하리라고 기대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회부했다가 부결되자 사퇴했으며 같은해 콜롬비아 정부도 국민투표에 부친 평화협정이 당연히 가결될 것으로 예상했다가 이와 달라 반대표가 과반을 차지하자 후안 마우엘 산토스 대통령이 최대 정치위기에 직면했다.
다만 개헌안 투표에서 패배해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19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입김이 세진 야당을 상대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쥘 때까지 정치적 불안정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전 행보를 보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일부러 위기를 야기하거나 불안감을 고조시킨 전력이 있어 국민투표에서 패할 경우 이런 전략을 다시 구가할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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