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자생지…매연·전정에 왕벚 가로수 수령 줄어 '대책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의 왕벚꽃축제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20m 가까이 되는 훤칠한 왕벚나무에서 풍성하게 피어난 벚꽃이 터널을 이룬 축제장은 간간이 눈발처럼 날리는 꽃송이들이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세계 유일의 왕벚나무 자생지 제주.
학계의 유전자 분석과 연이어 발견된 자생 왕벚나무의 존재만으로 100년 넘게 이어진 원산지 논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 왕벚나무 원산지는 '제주'
지난해 5월 제주 산간에서 최고령 자생 왕벚나무가 발견돼 화제가 됐다.
해발 607m 높이의 제주시 봉개동 개오름 남동쪽 사면에서 수령 265년 된 왕벚나무가 발견된 것이다.
나무의 높이는 15.5m, 밑동 둘레는 4.49m나 돼 지금까지 알려진 왕벚나무 중에서 최대 크기다. 이 나무의 나이는 목편을 추출·분석해 추정했다.
이전까지 알려진 가장 크고 오래된 왕벚나무는 천연기념물 159호인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의 3그루 중 한 그루다. 이 나무는 높이 15m, 밑동 둘레 3.4m, 수관폭 15m, 추정 수령 200년이다.
최고령 왕벚나무의 발견은 벚꽃을 둘러싼 한·중·일 원산지 논쟁에서 제주도가 유일한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한 쾌거였다.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 4월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타케 신부에 의해 자생 왕벚나무가 제주에서 처음 발견됐다. 그는 한라산 해발 600m 지점인 관음사 부근에서 왕벚꽃을 발견, 표본을 채집해 독일의 식물학자 케네 박사에게 보내 일본의 벚꽃 중 가장 유명한 품종인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와 같다는 감정을 받았다.
이어 1932년 4월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 박사도 한라산 남쪽 지점에서 자생한 왕벚나무를 발견하면서 사실상 제주가 왕벚꽃의 자생지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록만 있을 뿐 자생 왕벚나무 실체가 제주에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식물학자들은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은 왕벚나무 야생종이 일본에는 없고 유독 제주에서 발견된 기록이 나오는 점 등을 들어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이며, 일본으로 건너가 퍼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일본 학자들은 일본에도 왕벚나무 자생종이 있었으나 널리 재배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이라며 반박해왔다.
논란이 뜨겁게 이어지던 1962년 4월 박만규·부종휴 박사 등이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면서 명실상부 제주가 왕벚나무 원산지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1년 4월 산림청 임업연구원 조경진 박사팀은 DNA 분석을 통해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 한라산임을 밝혀냈다.
2014년 11월에는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김승철 교수 연구팀이 제주도 왕벚나무의 기원을 밝혀 국제 학술지인 '미국식물학회지'(American Journal of Botany)에 싣기도 했다.
그 와중에 2015년 3월에는 허쭝루(何宗儒) 중국 벚꽃 산업협회 집행주석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양측은 모두 원산지를 논할 자격이 없다"면서 "많은 사료는 벚꽃의 발원지가 중국이란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한·중·일 3국으로 확산했다.
그러나 이는 벚꽃 자체의 원산지를 중국이라 말하는 것으로, 일반 벚나무와 다른 왕벚나무의 원산지 논쟁과는 벗어난 주장이다.
왕벚나무는 세계적으로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로 나무의 키가 크고 웅장하게 자라며, 꽃보다 잎이 먼저 자라나는 일반 벚나무와 달리 꽃이 먼저 피어나고, 꽃자루와 암술대에 털이 있으며, 꽃자루 하나에 꽃이 여러 개 달려 다른 벚나무에 비해 화려하다는 특징이 있다.
◇ 왕벚 가로수 매연에 수령 줄어 대책 필요
해마다 4월이 되면 제주왕벚꽃축제가 열리는 제주시 전농로 일대와 제주대학교 입구의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수백 그루의 왕벚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려 장관을 이룬다.
많은 제주도민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축제장을 찾아 가족 또는 연인,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고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떨어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그러나 전정(가지치기) 작업 또는 자동차 매연 등으로 인해 왕벚나무 수령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농로에는 161그루, 제주대 입구에는 232그루의 왕벚나무가 심겨 있다.
전농로에는 1970년대를 전후해 왕벚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1982년에 제주시가 왕벚나무를 심어 벚꽃길을 조성했다.
제주대 입구의 벚꽃길은 1983년에 조성됐다.
당시 8∼10년이 된 묘목이 쓰인 것을 고려하면 이들 왕벚나무는 수령이 50년 가까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가로수로 쓰이는 벚나무의 수령은 60년 정도라고 말한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는 인위적인 제약이 없기 때문에 긴 수령을 자랑하지만, 도로에 심어진 왕벚나무는 매연과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전정작업으로 인해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소장인 김찬수 박사는 "일본에 '매화나무를 자르지 않는 바보, 벚나무를 자르는 바보'라는 속담이 있다"며 "이는 매화나무는 적당히 전정해야 가지가 잘 발달하지만, 벚나무는 전정하게 되면 전정을 한 부분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전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로수로 쓰인 왕벚나무가 동시에 한꺼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일본에서는 점차 쇠퇴해 가는 왕벚나무를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주시청 문성호 주무관은 "전깃줄이나 대형탑차가 지나가다가 가지에 걸리는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전정해야 한다"면서도 "큰 가지는 자르지 않고 잔가지 위주로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장 교체해야 할 정도로 쇠퇴한 왕벚나무는 아직 없다며 앞으로 10∼20년 정도는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며 점진적인 교체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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