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정상회의 앞두고 교황청서 회동…"포퓰리즘 최고 해독제는 연대" 강조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출범 60년 만에 최대 분열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 지도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없으면 EU가 죽고 말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바티칸 사도궁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EU 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현재의 유럽은 가치 공백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육체가 방향 감각을 잃고,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으면 퇴행을 경험하고, 이는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내주 EU 탈퇴를 공식 통보하는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 정상들은 이날 EU의 모태가 된 로마조약 체결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서 열리는 기념식과 특별 정상회의 전야에 교황을 예방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모여 1957년 3월 25일 체결한 로마조약은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유라톰)의 창설로 이어지며 통합 유럽의 기틀을 다진 계기가 됐다.
교황은 60년 전 통합 유럽의 초석을 놓은 6개국 지도자들은 파괴적인 2차 대전 직후에 미래에 대한 믿음과 혜안을 보여줬다며 "그들은 담대함을 결여하지 않았고, 너무 늦게 행동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의 이 같은 발언에는 이민자와 난민에 장벽을 쌓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 세계적 포퓰리즘 열풍 속에 유럽의 통합 정신이 퇴색하며 유럽에 탈(脫) EU 바람이 불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장벽과 분열의 비극은 60년 전의 선조들이 통합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계기가 됐지만 현대 유럽인들은 이를 잊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인들은 두려움과 위기에 사로잡혀 포퓰리즘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자신들의 편협한 시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교황은 이어 "유럽이 활력을 되찾는 최우선 요소는 연대"라며 "연대야말로 포퓰리즘,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의 자양분이 되는 우리 시대의 가치 공백에 항하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라고 강조했다.
난민과 이민자의 적극적인 수용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교황은 "이민을 단순히 숫자나 경제, 안보 문제로 접근할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난민 위기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유럽 각국에 난민들에 대한 문을 닫고, 벽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또 유럽인 상당수가 전쟁과 기아를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난 난민을 안온한 삶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하며 "현대 유럽이 2차 대전의 폐허와 이에 따른 대량 이민으로 탄생했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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