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원숍 가고·중고거래하는 사람들…불황이 만든 소비 트렌드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서울 마포구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이 모(31) 씨는 필요한 물품은 모두 저가 생활용품점인 '다이소'에서 산다. 이 씨 집의 휴지통, 시계, 옷걸이, 양말, 컵, 식기대 등은 모두 다이소에서 사 온 것들이다.
혼자 집에서 밥을 해결할 때에는 배달음식은 비싼 것 같아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 배달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는 배달시키는 것보다 직접 사오는 게 더 저렴하므로 귀찮아도 나가서 사온다.
이 씨는 "다이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다이소에서 산다"며 "우선 싸고, 품질도 나쁘진 않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은 제자리인데 월세와 체감물가는 올라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 모(29·여) 씨는 최근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를 자주 찾는다. 얼마 전에 사고 싶었던 한정판 곰 인형을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인데도 반값에 '득템'(아이템 획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제품이 남이 쓰던 물품일 수 있고 판매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어 중고 거래가 꺼려졌다. 그러나 한번 경험을 해보고 나니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중고 거래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김 씨는 최근 한 명품 잡화 사이트의 렌털 서비스도 이용했다.
명품 가방을 사려면 몇백만 원씩 내야 하지만, 이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면 10분의 1 정도의 가격으로 한 달 동안 가방을 빌려 들고 다닐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렌털 서비스로 같은 가방을 빌릴 수 있으므로 새 제품은 아니다.
김 씨는 "렌털 서비스로 한 달 내내 가방을 들고 다녀도 다른 사람들은 내 가방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며 "어차피 비싼 돈을 주고 사도 몇 개월 들고 다니면 질리기 마련인데 저렴하게 빌려 들고 다니다 반납하면 돈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최근 이 씨와 김 씨처럼 이른바 '불황형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이소 등 1천∼2천 원에 필요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이나 중고 거래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1ℓ 커피, 750㎖ 요구르트와 같은 대용량 제품을 찾는 '실용주의' 소비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수 경기가 침체해 있어서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제품과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찾는다고 분석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수출이 잘 되고 증시도 나쁘지 않지만, 우리 경제가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수출은 환율이 많이 올랐을 때의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것이고 주가는 외국인 자본이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개인 소비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며 "조기 퇴직 등도 많아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 하다 보니 '가성비'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황기나 저성장기에는 소비자들이 싸고 좋은 제품을 찾는 '가치소비'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가품이나 신제품도 팔려야 내수가 살아나지만, 사람들은 큰 돈을 쓰지 않는다"며 "소득도 늘어나지 않고 직장이나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희 교수는 한국이 과거 일본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도 과거 백엔 숍 등 다이소와 같은 중저가 제품을 파는 곳이 인기를 끌었다"며 "일본도 과거 수출은 잘 됐지만, 내수가 살아나지 않아 계속 저성장을 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계속 가성비, 가치소비 등이 강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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