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가 남긴 우울하고 달콤한 러브레터…"날 잊지 마세요"

입력 2017-03-26 14:59  

피나가 남긴 우울하고 달콤한 러브레터…"날 잊지 마세요"

피나 바우슈의 '스위트 맘보'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24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무용계 거장 피나 바우슈(1940~2009)의 '스위트 맘보'는 나흘간의 티켓(4천여석)이 일찌감치 전체 매진됐다.

이번 작품은 피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1년 전인 2008년 독일에서 초연된 작품이어서 그의 유작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를 그리워하는 무용 애호가들은 물론 피나 바우슈라는 '빅 네임'에 호기심을 품은 일반 관객들까지도 공연장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생전에 이끌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무용수 10명은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의 이런 기대와 향수를 충족시켰다.

춤과 연극의 경계가 허물어진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사랑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바우슈의 철학을 전달했다.

막이 오르자마자 한 여성 무용수는 "내 이름은 레지나예요. 잊지 마세요. 내 이름은 레지나"라며 서툰 한국말로 관객에게 대뜸 말을 건다.

이후에도 피나 특유의 인과가 뚜렷하지 않은, 파편 같은 장면들이 이어 붙여진다.




앙상한 어깨와 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성 무용수 7명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 무용수 3명은 관능적인 춤으로 서로를 유혹하기도 하고, 격렬하게 다투며, 뜨겁게 사랑한다.

무용수들은 머리채를 잡아당긴 채 무대를 뛰어다니며, 스스로 물을 끼얹고,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관객에게 드레스 지퍼를 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정형화된 '예쁜 동작' 대신 격렬한 움직임과 대사, 사회에 대한 풍자적 시선과 위트 등에서 피나 특유의 무용 문법이 그대로 읽혔다.

사랑스럽고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어느 순간 객석은 뭉근한 애잔함에 먹먹해지기도 한다. 시(詩)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달콤하지만 우울한 장면들의 연속이다.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 피나의 말처럼 연인 혹은 사람 간의 변덕스럽고 엉망진창인 이야기들은 결국 관객들에게 '내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무대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는 세상을 떠난 피나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대도 간결하면서 감각적이다. 물결처럼 흩날리는 흰색 커튼 위에는 독일의 흑백 영화 '파란 여우'(1938)가 투사됐다.

개막일에 공연을 관람한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피나에 대한 추억으로 아련해진다"며 "무용수들은 근육에 힘을 모두 뺀 연체동물처럼 움직였으며 커튼도 심연의 세계, 구원의 손길처럼 출렁였다. 피나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다만 피나 초기작에서의 속도감 넘치면서도 파격적인 무용 언어를 기대한 일부 관객들은 다소 아쉬움을 느꼈을 수 있다.

김윤철 국립극단 단장은 "초기 작품에 비해 상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이 반복됐다"며 "그러나 피나의 철학적이면서 관조적인 시선을 읽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평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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