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독일 연방검찰이 터키 정보 당국의 독일 내 사찰 혐의에 관해 수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양국 간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슈피겔온라인은 28일(현지시간) 터키 정보기관 MIT가 독일 내 터키인들을 사찰한 혐의에 대해 독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검찰은 MIT 요원들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으며, 독일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도 MIT의 활동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독일에서 사찰행위를 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
그는 이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해외 모든 국가와 정보기관에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경고했다.
MIT가 사찰한 대상은 지난해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 시도의 배후로 터키 정권이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추종 세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터키 정보기관의 표적이 된 이들이 터키계 독일인이라고 보도했다.
온건 이슬람주의자인 귈렌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숙적으로,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였으나 사이가 틀어져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되자 오히려 에르도안의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에서는 귈렌 추종 의심 세력이 대거 체포됐다. 교사, 군인, 야권 정치인을 비롯해 수만 명이 체포됐고, 10만 명이 넘게 직장에서 해고됐다.
독일 정보 당국은 앞서 귈렌이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라는 터키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일 언론은 MIT가 지난 2월 독일의 해외첩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에 독일 거주 귈렌 지지자 300여 명과 귈렌 지지 그룹, 학교, 기관 200여 개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이들을 감시할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독일 당국은 이 같은 요청을 수용하는 대신 해당자들에게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으며, 터키에 가면 체포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터키 정보 당국의 이번 사찰 의혹은 내달 16일로 예정된 터키의 대통령중심제 개헌안 국민투표가 3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불거진 것이다.
이번 개헌안은 터키의 정치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최장 2029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된다.
FT는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과열된 터키 내 정치 상황이 300만 명에 이르는 터키인이 사는 독일에까지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악화한 독일과 터키 관계에 더욱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독일 당국이 자국 내 터키 개헌안 지지집회를 차단한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이 '나치'와 같은 수법을 쓰고 있다며 연일 극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교장관이 "선을 넘었다"고 경고하는 등 양국 간에는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독일은 난민사태 해결이나 안보를 두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인 터키와 필수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양국은 에르도안 정권의 잇따른 법치, 민주주의 훼손 논란과 더불어 계속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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