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본 안동 가문끼리, 상주본은 상주·안동서 원래 소장처 논쟁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손대성 기자 = 현존하는 2개 훈민정음 해례본을 놓고 원래 소장처가 어디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자로 훈민정음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글이다.
광복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기 전에는 훈민정음 창제 원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강점기만 해도 고대 글자를 모방했다거나 창살을 본떴다는 등 여러 의견이 나돌았다.
해례본이 나옴에 따라 훈민정음 자음이 입이나 혀, 모음이 하늘·땅·사람 모양을 본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상에 나온 해례본은 2개밖에 없다.
하나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간송본이고 다른 하나는 경북 상주 골동품 수집가인 배익기씨가 갖고 있다는 상주본이다.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한 간송미술관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배익기씨가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책은 2008년 잠깐 세상에 드러났다가 행방이 묘연하다.
두 책이 애초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 간송본 원소장처 문중 대결 = 간송본은 안동 서예가인 진성이씨 이용준이 1940년을 전후해 간송 전형필에게 거금을 받고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준이 과연 어디에서 책을 확보했는지를 놓고 최근 안동에 있는 가문끼리 논쟁이 붙었다.
시작은 지난 1월 안동시와 (사)유교문화보존회가 연 '훈민정음 해례본 복각 전시·학술대회'였다.
당시 한 중학교 교사가 "해례본 간송본 원소장처는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인데 이용준이 처가에서 책을 가져온 뒤 긍구당 장서인(藏書印)이 찍혀 있는 표지 등을 찢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진성이씨 대종회는 지난 2월 안동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해례본 원소장처는 진성이씨 주촌(周村·두루) 종택이다"고 맞받았다.
대종회 측은 "일부 학계에서 이용준이 처가인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에서 해례본을 몰래 가져온 뒤 팔아먹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성이씨 모든 가문 역사를 부정·왜곡하고 명예와 자부심을 훼손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 14대 종손 김대중(84)씨가 28일 안동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례본 간송본은 1940년 초까지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긍구당이 원래 소장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긍구당 측은 "해례본 간송본 원소장처는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인데 이용준이 처가에서 책을 가져가고 긍구당 장서인(藏書印)이 찍혀 있는 표지 등을 찢어 훼손한 뒤 매도했다"며 강조했다.
또 "진성이씨 측 선조인 이정(李禎)이 세종대왕에게 직접 해례본을 하사받았다는 것은 시기로 봐서 맞지 않는다"며 "이정이 최윤덕 장군 막료로 여진 정벌에 참여해 이룬 군공(軍功)으로 논공행상에서 판관 벼슬을 받고 13년이나 지나 훈민정음이 나왔다"고 했다.
이렇게 가문끼리 논쟁을 벌여 과연 출처가 어디인지 혼란스럽다.
문화재청 차원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상주본 원소장처도 헷갈려 = 훈민정음 상주본도 원소장처를 놓고 여러 설이 떠돈다.
상주본이 외부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8년 7월이다.
상주에 사는 골동품 수집가인 배익기씨가 "집수리를 하다가 상주본을 발견했다"며 외부 문화재 전문가에게 알렸다.
당시 감정에 참여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간송본과 동급 이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골동품업자 조모씨가 자기 가게에서 배씨가 다른 고서적을 사며 상주본을 몰래 끼워 넣어 훔쳐갔다고 주장해 민·형사 소송이 벌어졌다.
배씨는 민사소송에는 졌으나 형사재판에서 절도 혐의에 무죄를 받았다.
문제는 소송 과정에서 훈민정음 상주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배씨는 "나만 아는 장소에 상주본을 뒀다"며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는다.
검찰과 법원이 압수수색과 강제집행에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민사 판결로만 보면 상주본 소유권은 골동품업자 조씨에게 있다.
조씨는 2012년 5월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그해 숨졌다.
그러나 배씨는 "국가가 1천억원을 주면 헌납할 뜻이 있다"고 밝혔을 뿐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오는 4월 12일 치르는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와 별도로 불교 조계종은 상주본이 애초 안동 광흥사에서 도난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계종 측은 "배씨 형사재판에서 도굴범이 출석해 1999년 광흥사 나한상 복장에서 훔쳐 돈을 받고 팔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광흥사는 조선 시대에 인쇄를 많이 했다고 한다.
1952년에는 광흥사에 있던 월인석보 판목이 불에 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상주본 출처를 놓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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