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천문학적인 유산으로 막대한 국가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그리스 국민들을 기만해온 그리스판 '봉이 김선달'이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29일 그리스 ANA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사법당국은 28일 '자칭 억만장자'인 아르테미스 소라스(50)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그리스 검찰이 소라스와 그의 측근 7명을 사기와 횡령, 범죄 조직 결성 혐의 등으로 기소함에 따른 것이다.
소라스와 그가 결성한 '그리스 협의회'라는 정치 조직은 소라스가 가진 막대한 자금으로 그리스의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리스 시민들에게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은행 상환금 등을 내지 말라고 선동했다.
수 천 명의 그리스 시민들은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다는 소라스의 말에 속아 '그리스 협의회'에 가입해 가입비까지 납부한 것으로 보도됐다.
협회에 가입한 지지자들을 고대 그리스 신에게 맹세하는 의식을 치르게 하며 스스로를 그리스 긴축과 채무 위기에 저항하는 운동가로 격상시킨 소라스의 사기 행각은 재정 위기로 그리스가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고통스러운 긴축에 들어간 직후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20세기 초 그리스중앙은행과 합병된 은행의 막대한 주식을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아 부를 일궜고, 현재 미국 채권 시장에서 6천억 달러(약 668조원) 규모의 신탁자금을 운영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농담이라고 여겼으나, 몇 년째 빚과 생활고에 찌든 사람 상당수는 소라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소라스의 꾐에 빠진 약 7천 명의 그리스 시민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등을 방문, 자신들의 채무가 소라스의 신탁 자금에서 인출된 돈으로 상환될 예정인지를 물었고, 이에 그리스 사법당국은 수사에 착수해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스 검찰이 그리스 주요 은행 5곳에 소라스의 자산 규모를 조회한 결과 그의 자산이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국의 수사망을 피해 도주 중인 소라스는 별건의 횡령 혐의로 지난 18일 진행된 궐석 재판에서 아내와 함께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뒤 "나야말로 진정한 토종 그리스인"이라며 "결코 굴복하지 않고 (당국과)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영상 메시지를 인터넷에 올렸다.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이후 8년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그리스는 3천200만 유로(약 384조원)에 달하는 국가 부채 속에 현재 국민 3명 중 1명이 빈곤선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그리스는 현재 3차 구제금융의 추가 분할금 집행을 위한 선결 조건을 둘러싸고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등과 몇 주째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추가 긴축을 놓고 이견을 보이며 또 다시 채무 위기가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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