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EU 분열 막는 게 중요" 강경 노선 예고
메이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는 게 내 확고한 결의" 의지 다져
오바마-메르켈 이어 트럼프-메이 관계도 변수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브렉시트 해결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EU)의 보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29일(현지시간) 출발점을 떠난 2년간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은 메이와 메르켈 두 여성총리의 승부로 판가름날 것으로 평가된다.
오는 9월 열릴 총선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가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의 강력한 도전을 맞았지만 현재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메르켈이 4연임 도전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메이가 지난해 7월 총리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찾아가 만난 외국 정상이 메르켈이었다. EU 27개국을 이끄는 메르켈이 진정한 협상 상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메이는 메르켈이 옆에 선 공동기자회견에서 "성공적으로 일해서 영국과 독일 국민이 각기 원하는,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를 원하는 두 여성이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메르켈은 "두 여성"이라는 언급에 대해 "정확하다"며 "내용적으로 모두 동의한다"고 답했다.
짧은 탐색전이었다.
이후 포풀리스트 부상 등으로 유럽의 분열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메르켈은 영국의 탈퇴 의사 통보를 마냥 기다려야 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신속히 협상을 시작하자고 거듭 요구했다. 메르켈도 이에 동조했지만 '기다리겠다'며 인내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역전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미 메르켈이 협상 모드로 변했다. 지난 9일 EU 정상회의 도중 영국내 EU 시민권자 거주권한 보장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싶어하는 메이에게 협상이 시작된 후에 가능하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메이는 의회에 이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영국이 72조원을 제시할 이혼합의금에 대한 원칙적 동의를 하기 전에는 다른 의제들을 논의하지 않겠다는 게 독일의 태도라고 블룸버그 등 영국 언론들이 전했다.
메이 총리로선 영국-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속도를 내 경제에 드리워진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서둘러 털어내야 한다. 2년안에 협상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들도 나오는 터다. 지금까진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충격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경제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다.
협력을 강조하고 공격적 발언을 절제해온 메르켈이 '강경노선'을 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분위기를 전했다.
메이가 지난 1월 17일 단일시장을 떠나겠다고 천명한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고 FT는 풀이했다.
메르켈은 이틀 뒤 "메이 총리가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관한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이 분열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회원국 지위와 회원국으로서 누리는 특권의 불가분성을 강조하며 영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챙기는 '체리피킹(과실 따먹기)'을 막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메르켈의 현재 우선순위는 불안해진 EU 통합에 놓여 있는 만큼 분열을 막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채택했다고 FT는 관측했다.
메르켈은 서둘러 '다양한 속도의 유럽'(multi-speed Europe) 방식의 통합 추진을 끌어내며 EU 통합을 둘러싼 불안감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또 열렬한 브렉시트 지지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변화할 조짐을 보이는 미·영·독 관계도 메이-메르켈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누렸던 긴밀한 관계를 트럼프-메이가 바통을 이어받을 조짐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누린 긴밀한 미·영 관계를 재현하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메이를 백악관에 초청하고 경사진 복도를 따라 걸을 땐 메이의 손을 잡아주는 등 친근함을 보이려 했다.
반면 지난 17일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사진 기자들이 악수하는 장면을 요청하자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며 "악수하실래요?"라고 물었지만, 트럼프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손끝을 모은 채 기자들만 바라보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메르켈은 고립과 자국 우선주의로 표현되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자유무역의 보루로 여겨진다. 메이와는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메이와 메르켈 모두 실용적 접근을 취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영국은 EU 전체 경제의 17%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영국에선 시장경제 관점에서 EU가 '큰 시장'인 영국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메이와 메르켈이 상호 이익이 되는 분야를 찾아 타협하는 것이 윈-윈이라는 인식 아래 절충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다.
메이 총리는 이날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앞으로 보낸 탈퇴 서한에서 '체리피킹'은 안 된다는 EU 정상들의 입장을 존중해 EU 단일시장을 포기했다"며 "건설적이고 존중하는 태도로" 협상하자고 촉구했다.
메르켈 총리도 이날 "공평하고 건설적으로 협상할 것"이라며 "영국 정부 또한 이런 정신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며 표면적으로는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수많은 쟁점을 둘러싸고 메이와 메르켈을 향해 자국에서 터져 나올 자국의 이익을 강조한 목소리와 압력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정상이 이런 압력을 안은 채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딜을 할지에 따라 영국과 독일, 그리고 EU 미래가 결정된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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