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아몬드나 복숭아씨를 닮은 편도체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감정을 느끼게 하는 뇌 기관이다.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게 태어난 윤재는 기쁨도 슬픔도 없는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 환자다. 동네 형이 맞아 죽는 걸 보고도 태연한 윤재를 사람들은 괴물이라고 했다.
엄마는 윤재에게 감정을 교육시켰다. 상대방이 웃으면 똑같이 미소를 짓고, 차가 가까이 오면 몸을 피하라는 식이었다. 윤재는 감정을 둘러싼 관습은 어느 정도 익혔지만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윤재의 생일날 묻지마 살인범이 휘두른 망치에 할머니가 죽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면서 윤재는 홀로 남겨졌다.
작가 손원평(38)의 장편소설 '아몬드'(창비)는 공감 불능을 치유하는 소년 윤재의 성장기다. 윤재는 세상을 향해 막무가내로 폭력을 일삼는 또다른 '괴물' 곤이와 우정을 쌓고, 달리기밖에 모르는 도라와 풋사랑을 나누면서 조금씩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소설은 역경을 딛고 진정한 인간이 되는 괴물 소년들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는다. 윤재와 곤이가 괴물이 된 건 선천적 질병과 불우한 환경 탓이기도 했지만 이들과 감정을 나누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의심스러운 눈길만 보내는 사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소설 속에서 의붓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미국 작가 P. J. 놀란은 말한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무자비한 폭력에 생사를 오가던 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윤재가 보기에 그들의 공감은 진짜가 아니었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작가는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등 여러 편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소설은 영화 시나리오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장면 전환이 돋보인다. 작가는 첫 장편인 '아몬드'로 지난해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달에는 또다른 장편 '1988년생'으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작가는 책 뒷머리에 "이 소설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썼다. 26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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