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사람·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멍청이의 포트폴리오 =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초기 단편과 에세이, 미완성 SF소설 등을 묶은 책. 장편 '제5도살장'(1969)으로 전세계적 인기를 얻기 전인 1950년대 쓴 작품들이다.
표제작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양부모의 유산을 탕진하려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스노우, 당신은 해고예요'에도 젊고 예쁜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진 두 '멍청이'가 등장한다. 부조리한 사회와 삶의 아이러니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엿볼 수 있다.
"진정해요, 진정해. 미인계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기 수법이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그들은 곧장 꼬리를 내릴 겁니다. 그들에게 당신 돈 대신 명성을 가져가라고 하면, 아마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단 10센트도 주지 말아요!"
문학동네. 이영욱 옮김. 244쪽. 1만3천원.
▲ 내가 훔친 기적 =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 강지혜(30)의 첫 시집.
언제든 터지고 찢겨버릴 수 있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상처, 폭력과 애증, 견딜 수 없음을 노래한다. 아버지는 동생을 구타하고 나는 "바늘처럼 뾰족해진 엄마"를 찾아 때리고 싶다. 화자는 퇴근길 의자를 들고 사람들로 가득찬 전철에 올라타며 서글픈 돌파구를 만든다.
"의자를 들고 전철에 탔지만 자리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의자를 들고 있는데 앉을 수가 없으니 나와 의자는 슬펐다 그리고 의자는 분명히 외로웠다/ (…)/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구겨져 들어왔다 밀지 마세요 밟지 마세요 미안합니다 미안하지만 불쾌합니다 나와 의자는 서로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민음사. 168쪽. 9천원.
▲ 작가라는 사람 1·2 = 캐나다의 문학평론가이자 라디오 진행자 엘리너 와크텔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꼽히는 22인을 인터뷰했다.
올리버 색스, 윌리엄 트레버, 이사벨 아옌데, 아미타브 고시, 해럴드 블룸, 존 버거 등이 작품뿐 아니라 주변과 사회,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개입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일본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와크텔에 대해 "내가 전 세계에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작가들과 인터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엑스북스. 허진 옮김. 각권 320쪽. 각 1만4천800원.
▲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글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 와세다대 명예교수의 하루키 평론집.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을 시대별로 훑어보며 작품세계의 변화상을 설명한다.
저자는 '양을 둘러싼 모험' 등 1982∼1987년까지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이 고립된 채 '개체의 세계'를 살았다면 이후 '노르웨이의 숲' 등 1999년까지는 '쌍의 세계'에 들어서며 연애소설이 탄생했다고 본다. '해변의 카프카'나 '1Q84' 등 1999∼2010년까지 작품에서는 아버지 또는 그에 준하는 인물과 갈등이 그려진다.
불합리·권력·권위에 대한 부정이 일본 근대문학의 토대였다면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긍정적인 것을 긍정하는' 최초의 자각적인 작품이었다. 하루키 소설은 대중영합적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평단의 박한 평가를 깨고 여느 순문학 작품 못지 않은 문학성을 지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담. 김난주 옮김. 28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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