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위해 EU법→영국법 전환
의회회피 가능성에 '헨리8세 칙령'될까 우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유럽연합(EU) 탈퇴를 추진하는 영국이 EU 법안 폐기에 따른 공백을 채우기 위해 구상하는 '대폐지법'(Great Repeal Bill)을 놓고 영국에서 '복사해서 붙이기 법'(Great Cut-and-Paste Bill), '헨리8세법' 등 각종 평론이 쏟아진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0일 보도했다.
대폐지법은 2019년께로 예상되는 영국의 EU 공식 탈퇴를 대비해 EU법을 영국법으로 대체하기 위해 EU 법규의 우선주의를 명시한 유럽공동체법을 폐지하고 영국이 유럽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 관할에서 벗어나는 한편 EU 법규를 변경없이 영국 법규로 옮기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적용되는 EU 법 규정만 1만2천여개를 웃도는 상황에서 대폐지법으로 법률 연속성을 확보해 혹시 모를 혼선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영국 법규로 바꾸면서 일부 법안은 아주 작은 범위로만 손질하는 등 상당수 법규가 기존 EU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곧바로 '복붙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에 영국 정부가 마치 16세기 헨리 8세 국왕이 재임 시절 한 것처럼 포고만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헨리 8세 조항'을 신설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며 영국이 EU와 관계를 끊으면서 수세기 앞서 유럽 대륙과 결별한 헨리 8세를 따라 한다는 비난도 뒤따르고 있다.
헨리 8세는 부인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볼린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 및 유럽 대륙과 결별하고 왕의 포고만으로 입법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영국 정부가 이처럼 포고만으로 법 제정이 가능토록 하려는 데는 각각의 법 조항을 검토하는 데 따른 시간을 절약하고 좀 더 빠른 속도로 법 제정 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그러나 의회 내에선 정부가 사안을 쉽게만 해결하려 한다며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대론자들은 속도에 치중해 입법 및 법 개정 절차를 간소화해선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 장관은 의회에서 헨리 8세 조항 같은 보조법으로 1천개 이상의 법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정책 문제 상관없는 '기술적' 변화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국민당의 스티븐 게틴스 의원은 "의회 통치권에 관한 문제"라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스코틀랜드의 열망도 헨리 8세 식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EU 탈퇴와 관련해 스코틀랜드 정부와 의회의 반대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데이비스 장관은 "게틴스 의원은 대중이 중세시대 행정명령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느냐"며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절차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해명에도 여전히 대폐지법을 둘러싼 우려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에서 "정부가 앞으로 2년 동안 역사상 최대의 복사·붙이기 작업을 한다"며 "몇몇 법규는 영국 법으로 바로 전환할 수 없어 '대폐지'가 단순히 '복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 개정이 거미줄 같이 엉킨 국제 조약, 기구, 법의 지배를 받는 현대 경제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FT 손질이 필요한 법규의 방대한 규모를 볼 때 일차적인 입법과 의회 심의 등의 절차를 온전히 밟을 수 없겠지만, 정부가 결정 과정에서 최대한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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