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54)이 새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해냄)를 펴냈다. 독일 베를린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을 연작 형태로 묶은 '별들의 들판' 이후 소설집으로는 13년 만이다. 단편 5편과 후기 형식의 짧은 산문 1편이 실렸다.
단편들을 문예지에 발표한 시기는 2000년부터 2010년 사이다. 5편 중 3편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으로 짐작되고 '공지영'이라는 이름의 등장인물도 여러 번 나온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좀더 좁히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보듬는 일을 시작으로 타인의 고통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각자의 고통을 교차시키며 공감, 나아가 연대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2007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일본어판을 출간하고 일본을 방문한 화자는 번역자 H를 공항에서 처음 만난다. H는 데이트 도중 납치돼 북한에 24년간 생활하다가 귀환한 일본인이다. 일본의 한 보수매체 기자는 인터뷰 자리에서 화자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H에게만 질문을 던진다.
일본 출판 관계자들이 H 납치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자 화자는 답한다. "인간이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뒤바꿔놓는 일을 저는 가장 증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증오하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화자가 겪는 남편의 폭력이 그렇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절규가 입증한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는지 비교적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소설가가 되면서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밤마다 소주를 몇 병씩 사가는지 아는 체를 하면 다른 가게를 찾고('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저런 일로 소송을 걸겠다는 이메일을 받고 나서 감정을 추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월춘 장구')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곧 숨이 끊어질 듯한 할머니가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하고 외려 가족과 반려동물들이 차례로 죽는 기괴한 이야기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미음 대신 흰밥을 찾고 갈비를 뜯는 할머니 곁을 가족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재력 때문이다. 공포와 불안을 내면화한 채 돈을 쫓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작가는 후기에서 고통을 고독·독서와 함께 창작의 필수요소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나고 보니 가해자가 피해자였고 피해자가 가해자였습니다. 내 인생에게 쉬지 않고 제출했던 피해자 진술서를 돌려받았습니다. 이 사소하고 무시무시한 걸 깨닫고 나니 삶은 벌써 가을로 접어들고 막바지로 달려갑니다." 243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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