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플랜 가동시엔 3천887억원 날릴 수도…'딜레마'
야권 "아무 대책 없는 수용, 좌시하지 않을 것" 경고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국민연금공단이 대우조선해양[042660] 채무 재조정안을 받아들이면 감당해야 할 평가손실이 2천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됐다.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천정배 의원(국민의당)이 국민연금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직접운용 2천500억원(이하 액면금액 기준), 위탁운용 1천387억원 등 모두 3천887억원어치의 대우조선 회사채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하면 이 가운데 50%는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3년 연장해야 한다.
이 경우 국민연금의 평가손실은 출자전환하는 50% 전액에 나머지 금액의 19%에 해당하는 액수를 더해 대략 산출할 수 있다는 게 나이스신용평가의 설명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1실장은 "작년 대우조선 회계감사에서 산업은행이 출자전환한 대출채권을 주당 1원으로 평가해 손상차손으로 손실처리했다"며 "이를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출자전환하는 전액을 평가손실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만기 연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은행 여신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기준으로 평가손실을 파악할 수 있다"며 "은행 여신 건전성을 '요주의'로 분류한다고 가정할 때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9%로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계산하면 국민연금의 채무 재조정안 수용 시 평가손실은 약 2천682억원으로 산출된다.
이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로 제시한 1천388억원의 두 배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채무 재조정안에 찬성한다면 특정 대기업 살리기에 또다시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야권은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STX조선 자율협약 때처럼 주채권은행이 자율협약에서 제외된 투자자들의 보유 채권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국민연금이 아무 대책 없이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하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채무 재조정안이 부결되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을 가동하겠다며 국민연금을 압박하고 있다. P플랜에 들어가면 채권단은 법원과 협의해 대우조선 금융채무의 최소 90%에 대한 출자전환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법원이 채무 탕감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자한 3천887억원 전액을 날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고려할 때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금융당국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일수록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이 문제 된 건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경우에도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산은이나 수은이 국민연금 등의 회사채를 인수하더라도 이는 결국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하려 해도 실사 보고서가 없어 평가손실을 산정할 수치를 확인 못 해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찬·반 결정만 재촉하지 말고 자료부터 제대로 협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은 등이 관련 자료도 국민연금에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오는 17∼18일 사채권자 집회일 전에 최종입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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