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찍으면 장롱으로 직행?…마이너스금리 후 1년간 30조원 늘어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일본에서 집에 현금을 보관하는 '장롱예금'이 계속 증가 중이다.
최근 급증세는 정부가 과세강화 조치들을 강구하자 상속세 등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이이치생명보험은 2월말 현재 장롱예금 규모가 43조엔(약 430조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8%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1년간 증가액은 3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6%에 해당할 정도로 많았다.
같은 시기 일본의 지폐 발행 잔고가 지난해 같은 때보다 4% 늘어난 99조엔이라는 점에 비춰 1년간 늘어난 지폐 잔고의 상당 부분이 장롱으로 직행한 셈이다.
일본은행이 1년 전 도입한 마이너스금리 정책으로 예금금리가 하락한 것이 증가 배경으로 꼽히지만, 금리는 그 이전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로금리였기 때문에 초저금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일본은행의 2016년 12월말 시점 통계로 보면 일본 국내의 현금보유 가운데 전체의 80%가 가계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장롱예금도 가계에 치우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은행은 "가계의 현금 보유는 예금금리와 상관관계가 있다"라고 분석한다. 다만 거대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간 0.01%다. 100만엔 맡길 경우 연간 100엔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런데 현금 보관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니혼게이자이 측이 실제로 1만엔권 신권 다발을 최근 많이 팔리는 50ℓ 금고에 채워본 결과 최대 4억엔 정도를 넣을 수 있었다. 이 금고의 가격은 20만엔(약 200만원)이다.
게다가 집의 보안 유지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현금 보관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미증유의 저금리라는 환경이 있다고는 해도 장롱예금을 늘리는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바로 세금 피하기, 즉 탈세 목적이다.
특히 회사를 경영하는 부유층 등이 상속세를 피하고자 장롱예금을 늘린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10억엔의 상속을 받은 도쿄도내에 사는 50대 남성은 현금 수입이 있었을 때에는 일부를 그대로 자택에서 보관하기로 하고 있다고 한다. 징세당국의 과세 포위망을 우려해서다.
일본에서는 또 2015년 1월 상속세 증세를 계기로 2016년 확정신고부터 3억엔 이상 재산 소유자 등이 자산의 내역을 명기한 '재산채무조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됐다.
조서는 상속세를 부과할 때의 참고자료가 된다. 한 세무사는 "탈세 의도까지는 없다 해도 부유층은 당국에 자신의 재산 상황이 탐지되는 것을 싫어한다"며 장롱예금 선호 배경을 풀이했다.
한국 주민번호와 유사한 '마이넘버제도'의 시작도 자산이 파악되는 것에 대한 경계감을 키워 장롱예금을 부추긴다.
대규모 현금 보유는 분명 불투명성이 크다. 국제적으로는 현금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경향도 강해진다. 인도는 2016년 11월 고액지폐 유통을 정지했고, 유럽에서도 500유로 지폐가 없어지게 된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재정이 불안해 조세원에 대해 감시강화가 되고, 장래에 증세 기조로 변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도 장롱예금 증가 요인이라고 풀이했다.
이같은 부유층의 증세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조세피난처 활용 등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없는 등 "증가중인 장롱예금의 근본 원인이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망했다.
ta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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