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개표결과 모레노 51.16% 득표…라소 "선거부정·재검표" 주장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4년 연장…어산지 추방 위기 모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에콰도르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됐다.
에콰도르 선거관리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정오 현재 99%를 개표한 결과, 좌파 집권여당인 국가연합당(알리안사 파이스)의 레닌 모레노(64) 후보가 51.16%를 득표해 48.84%를 얻은 우파 야당 기회창조당(CREO)의 기예르모 라소(61) 후보를 누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추진해온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4년간 더 이어지게 됐다.
이번 대선은 코레아 대통령과 국가연합당이 지난 10년간 집권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일궈낸 빈곤감소와 불평등 격차 해소에 대한 심판의 무대로서 주목을 받았다.
모레노 당선인은 수도 키토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지금부터 국가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자"고 말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2007∼2013년 부통령으로 코레아 대통령과 함께 일한 모레노 당선인은 코레아 대통령이 추진해온 빈곤 퇴치와 같은 사회복지와 경제 정책 등을 승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모레노는 공무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인들에게 매달 10만 원 이상의 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장애인 분야 유엔 특사를 역임한 그는 특히 장애인, 미혼모, 고령층에 대한 우대 정책을 비롯해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 일자리 창출, 어린이 영양실조 퇴치 등을 공약했다.
2012년 6월부터 주영국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무는 폭로 전문매체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모레노가 당선됨에 따라 추방 위기를 모면했다.
모레노 당선인은 어산지의 체류를 계속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라소 후보는 취임 후 1개월 이내 추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은행가 출신의 보수주의자인 라소 후보는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재검표를 요구했다.
라소 후보는 트위터에서 "우리는 바보가 아니며 에콰도르 국민도 마찬가지"라면서 "우리는 선거 당국을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행동하겠지만, 불법 정부를 세우려는 선거부정 시도에 맞서 확고하게 민심을 수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소 후보의 지지자들은 수도 키토에 있는 선관위 본부와 그의 고향인 과야킬의 선관위 앞에 집결해 공정한 개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라소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기업 규제 완화, 감세 등 친시장 정책과 함께 공공부문을 축소해 재정적자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변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투표 직전 해외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 49곳을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타격을 입었다.
선관위는 평정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면서 재검표 주장을 일축해 당분간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후안 파블로 포소 선관위원장은 "단 한 표의 개표 부정도 없었다"면서 "정치인들이 투표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존중하는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우파의 도덕적 사기는 처벌받을 것"이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출구조사 결과가 라소 후보를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혁명이 다시 승리했다"면서 "우파는 많은 돈을 퍼붓고 그들이 소유한 미디어를 활용했는데도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퇴임 후 부인의 모국인 벨기에로 건너갈 계획이다.
이번 에콰도르 대선은 중남미 좌파벨트가 건재함을 보여줬다.
국제사회는 원유, 구리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지난 10년간의 호황이 끝난 뒤 최근 1년 6개월 사이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등 남미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핑크 타이드'(온건 사회주의 물결) 퇴조 현상이 에콰도르에서도 재연될지 주목했지만, 좌파의 명맥 유지로 귀결됐다.
좌파 동맹국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개표 윤곽이 드러나자 트위터를 통해 모레노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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