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12는 우발적 사건"…회고록서 주장

입력 2017-04-03 18:41   수정 2017-04-03 19:07

전두환 "12·12는 우발적 사건"…회고록서 주장

'하극상 반란' 법원 판결 부정…"10·26은 김재규·정승화 쿠데타 시도"

"10·26 미국 연관설 사실일 수도 있다 생각"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은 3일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에 맞아 서거한 10·26을 '김 부장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 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신을 비롯한 신군부가 같은 해 일으킨 12·12는 "김재규 내란에 동조한 혐의가 명백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조사하고자 연행하던 중 발생한 우발적 사건"으로 설명하면서 권력을 잡기 위한 하극상 반란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부정했다.

1979년 초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된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정국을 "월권과 전횡을 일삼던 차지철 경호실장으로 인해 권력 내부 갈등은 곪아가고 있었다"면서 "어쩐 일인지 대통령은 일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뒀다"고 회고했다.

사건이 벌어진 10월 26일 저녁 서빙고동 보안사령부 수사분실로 이동 중이던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각하께서 분원(국군통합병원의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하신 것 같다"는 수준의 첩보를 입수했지만,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노재현 국방부 장관 호출로 육군본부 벙커로 이동한 전 전 대통령은 "막 들어섰을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면서 "그 이상한 기운은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이 풍기는 섬뜩한 살기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고 소개했다.

이때 벙커에서 만난 노 장관의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한 마디를 통해 박 대통령 서거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 전 전 대통령의 설명이다.

"군 수뇌부가 모두 모였음에도 무대책으로 있던" 벙커를 떠났던 전 전 대통령은 다시 노 장관의 호출을 받았다. 노 장관은 귓속말로 "각하를 시해한 사람이 김재규인 것 같다. 정 총장 지침을 받아 김재규 부장 신병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정 총장에게 김 부장이 시해범임이 틀림없다며 구속 수사를 요청한 시점은 27일 오전 1시 50분께였다고 소개했다.

김 부장이 안가로 이동 중에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할 때도 잘된 일이라는 투였다는 등의 허화평 대령 보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10·26을 수사한 전 전 대통령은 이 사건 전후의 정 총장 행적을 소개하면서 그가 깊이 연관됐다는 점을 회고록에서 줄곧 강조했다.

"김재규가 10·26 당일 정승화 총장을 궁정동 안가 본관에 불러다 놓은 것은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시해한 뒤 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될 정 총장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탈취하려는 것이었다"라고 전 전 대통령은 적었다.

이밖에 ▲당시 정 총장이 김재규 신병확보 당시 안가로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한 점 ▲정 총장의 계엄사령관 임명 소식을 접한 김재규가 조사를 받다 박수를 쳤다는 전언 ▲ 정 총장이 대통령 피살 소식을 접하고서도 상관인 국방장관에 보고를 소홀히 한 채 김재규와 계엄령 선포, 병력 동원 문제를 논의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전 전 대통령은 "10월 27일 새벽 국무회의가 계엄사령관이 될 수 없는 사람,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함으로써 12·12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 됐다"면서 12·12를 정당화했다.

12·12가 군사반란으로 평가받는 데 대해서는 "반란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인데 수사관 몇 명과 헌병만으로 거사하는 바보는 없다"면서 "내가 반란할 의도였다면 당연히 치밀한 병력 동원 계획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김재규를 "처세에 능하고 관운이 좋아 권력의 그늘에서 18년간 온갖 특권을 누린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김재규의 언동에서는 자신의 평생 은인인 박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충격이었다"고 적었다.

이밖에 10·26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의혹과 관련해 "나도 당시 10·26에 미국이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어쩌면 미국 묵인이나 최소한 암시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식적 의심"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합수부가 김 부장이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브루스터 미 중앙정보국(CIA) 관계자 등 미국 쪽 인사들과 만날 때 통역했던 사람들을 조사했으나, 김재규 범행에 미국이 관련됐다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김재규 조사가 본격화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청와대를 방문, 영애 박근혜 양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이제 집안의 어른이니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남은 가족이 용기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박 대통령을 "너무나도 큰 존재"라고 기억하면서 "주치의조차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는 그 얼굴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 보안사 분원에 있던 박 대통령의 주검을 보러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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