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도봉순' '사임당, 빛의 일기' 등서 감초 캐릭터로
"열린사회 가는 과정…대중도 다양한 캐릭터에 거부감 없어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캐릭터가 드라마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영화에서야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여러 편 나왔지만, TV 드라마에서는 아직 조심스러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의미있는' 행보들이 잇따르고 있다.
캐릭터에 따라 동성애자를 희화화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주류 매체에서 동성애자를 주요 배역에 배치하는 것 자체가 '발전'이라고 해석하는 시선이 크다.
◇'힘쎈여자 도봉순' 김원해 연기 '장안의 화제'
짙은 색조화장에, 강렬한 색으로 물들인 손톱, 일반 남성들은 절대로 소화할 수 없는 하늘하늘하고 섹시한 패션.
'힘쎈여자 도봉순'에 등장하는 '오돌뼈' 캐릭터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콧소리 섞은 하이톤의 발성과 간드러진 몸짓, 부하 직원에게 '땍땍'거리는 폼이 딱 성격 못된 언니 같은 캐릭터지만, 오돌뼈는 남자다. 다만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다. 그는 회사 대표 민혁(박형식 분)을 짝사랑하다 민혁이 여자인 도봉순(박보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캐릭터가 특이하기도 하지만 이 역할은 김원해가 연기해 더 파급력이 크다.
불과 얼마 전까지 KBS 2TV '김과장'에서 자면서 베개에 짓눌린 뒷머리 그대로, 대충 걸쳐 입은 후줄근한 차림새로 출근하는 중년의 기러기 아빠를 연기했던 김원해다. 그전엔 대개 조폭 아니면 '상거지' 차림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런 김원해가 180도 변신해 천연덕스럽게 '하이 클래스'의 동성애자 연기를 하니 주목도가 높다. 케이블 채널에서 7%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이니 보는 사람도 많다.
SBS TV '사임당, 빛의 인기'에는 의성군 이겸(송승헌 분)을 노골적으로 연모하는 예인 이몽룡이 등장한다. 실제로 2000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이 연기한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사극에 동성애자를 등장시킨 게 방점이다. 분량이 크지는 않으나 이겸이 등장할 때면 이몽룡이 그 옆에서 '꿀 떨어지는 눈빛'을 마구마구 쏘아대며 애정공세를 펼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종석도, 호야도 동성애자 연기…'희화화'는 없어
한류스타 이종석과 가수 호야도 드라마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했다.
2012년 tvN '응답하라 1997'에서 호야가 연기한 준희는 여자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원조 '초식남'이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춤을 아주 잘 춘다. 덕분에 여학생들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데, 알고보니 그는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다.
준희는 고교 단짝 친구인 윤제(서인국)를 마음에 두고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늘 윤제의 곁에 있었지만, 윤제가 시원(정은지)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마음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이종석은 2010년 SBS TV '시크릿 가든'에서 천재 음악가 썬을 연기했다. 썬은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와 늘 티격태격했는데, 알고봤더니 오스카를 사랑하고 있었다. 오스카가 윤슬(김사랑)과 맺어지자 썬은 쓸쓸히 떠났다.
그에 앞서 2010년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송창의와 이상우가 동성애를 연기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동성애자 캐릭터를 '감초' 역할로 내세우고, 짝사랑에 그치는 것으로 그린 것과 달리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수현 작가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이어줬다.
송창의가 의사 태섭, 이상우가 사진작가 경수를 맡았는데, 드라마는 두 엘리트 남성이 성 정체성으로 극심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조명했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 특징은 태섭도, 경수도 '여성적'인 면을 강조한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앞서 1999년 노희경 작가가 쓴 KBS 2TV 특집극 '슬픈유혹'도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뤘다. 김갑수와 주진모가 주연을 맡았는데, 이 드라마 역시 '여성적인 남성'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들 작품에서 그린 동성애자 캐릭터는 모두 '쿨'하거나 진지했다. 희화화는 전혀 없었다.
◇"열린 사회로 가는 과정"
'국내 1호 커밍아웃 연예인'인 홍석천은 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동성애자는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가지 캐릭터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낯설게 보는 분위기가 이제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 캐릭터 중에 멋있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면서 "동성애자 안에서 그러한 다양함이 보여지는 게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홍석천은 또한 "대중문화에서 성적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다뤄주는 것 자체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주의 환기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힘쎈여자 도봉순' 관계자는 5일 "대중이 다양한 캐릭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예전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라며 "그런 흐름에 맞춰 드라마에서도 잇따라 성적 소수자들이 종종 나온다"고 밝혔다.
다만, '힘쎈여자 도봉순'의 오돌뼈 캐릭터는 동성애자를 너무 희화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이 관계자는 "희화화하려는 게 절대로 아니다"라면서 "남-남 브로맨스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오돌뼈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 관계자는 "성적 소수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것 아니냐"면서 "다만 예전에는 다루기 조심스러웠다면 요즘은 시대 분위기가 달라져 극의 감초 역할을 할 수 있고 극을 좀 더 풍성할 수 있어 사극에도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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