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주변에선 예민하다지만 아기 낳기 싫어요" 삶이 달라졌다

입력 2017-04-05 10:00   수정 2017-04-05 10:12

[미세먼지] "주변에선 예민하다지만 아기 낳기 싫어요" 삶이 달라졌다

마스크 박스떼기 구매·공기청정기 필수품에 자전거는 '방콕'한 지 오래

대책없는 주부들 커뮤니티 활동 증가…어린이 방독면·산소캔 등 상품 잇따라




(전국종합=연합뉴스) 최근 인터넷 포털의 한 육아 커뮤니티에 30대 주부가 쓴 글이 큰 관심을 모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아기 낳기 싫어요'라는 제목의 이 게시글에는 순식간에 수십 건의 댓글이 달렸다.

글쓴이는 "주변에서는 예민하다, 유난스럽다고 하는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관련 호흡기 질환자가 급증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댓글의 대부분은 '나도 둘째 계획 접었다', '공기까지 신경 쓰고 살게 될 줄 알았다면 낳지 말 걸 그랬다'는 등 게시글에 공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두 살 난 딸을 키우는 직장인 오모(32·여)씨의 하루는 스마트폰을 열고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미세먼지 수치에 따라 야외활동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2주 동안 절반은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 실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오씨는 "우리가 어릴 때는 봄에 무조건 밖에서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미세먼지 때문에 엄마들도 야외활동을 극히 꺼리고 다들 실내운동장, 키즈카페 등을 전전한다"며 "마음껏 야외활동을 못 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4살짜리 손자를 돌보고 있는 윤모(62·여)씨는 손자가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은 2년 전부터 봄이면 공기청정기를 튼다.

진공청소기를 써도 미세먼지는 걸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먼지를 일으킨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분무기로 집안에 물을 뿌려가며 걸레질을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어느 날 마스크 없이 손자와 밖에 나갔다가 손자가 기침을 심하게 해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진 뒤로는 마스크 없이는 절대 외출하지 않는다.

춘천에 사는 주부 박모(28·여)씨는 아예 마스크를 박스째 사다 놓고 두 살배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씌워서 보낸다.

세발자전거도 사다 놓았지만 미세먼지 탓에 주말에도 '방콕'할 때가 많다.






호흡기 질환에 치명적인 어린이나 노인뿐 아니라 건강한 30∼40대 사이에서도 더는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4년 넘게 자전거 동호회원으로 활동 중인 박모(32)씨는 지난달부터 라이딩을 하지 않는다.

지난달 초 미세먼지가 '나쁨' 농도를 보인 날, 회원들과 함께 인천 경인 아라뱃길 자전거 전용도로에 다녀온 다음부터다.

"편의점에서 산 면 마스크를 썼지만 숨쉬기 어렵고, 눈이 따가워 도저히 라이딩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웰빙 바람이 불면서 등산·산책·자전거 타기 등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이젠 도리어 건강을 위협하는 취미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세먼지를 걸러준다는 가전제품들은 덩달아 인기다.

공기청정기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 수 있는 의류 건조기는 필수 혼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소아용 방독면·미세방충망·미세먼지 흡착 유아세제·산소캔 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주부들은 육아 커뮤니티를 통해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해 준다는 귤·미나리·미역 등을 이용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고,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를 동시에 돌리는 청소 방법과 DIY 공기청정기 만드는 법 등을 공유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미세먼지 정보를 믿을 수 없다며 일본의 미세먼지 정보 애플리케이션이나 다국적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대기질 지수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들은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데도 미세먼지를 '부유 먼지'로 바꿔 부르겠다는 대책이나 내놓는 환경부를 믿을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평소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임신부 이모(31) 씨는 최근 미세먼지 관련 대책을 촉구하는 카페에 가입했다.

이씨는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카페 운영진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미세·초미세먼지 측정소를 방문해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올려준다"고 말했다.

주부 박씨는 "요즘 엄마들이 모이면 '아기들 기침이 너무 잦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미세먼지 대책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대통령 후보를 뽑겠다는 게 요즘 엄마들 분위기"라고 전했다.

봄이면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의 공포가 우리 삶 자체를 확 바꿔 놓았다.

(안홍석 박정헌 박영서 장영은 최해민 최은지 한무선 차근호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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