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투입 정부 "관리 필요" vs 100% 주주 중앙회 "이번만은 우리가…"
면접까지 했으나 선정 못해 10일 행추위 다시 열기로…"금융소비자는 안중에도 없어"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차기 수협은행장 내정 과정을 둘러싼 사외이사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54년 만에 수협중앙회로부터 분리해 새 출발 하는 수협은행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수협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의 입장과 수협은행의 100% 주주인 수협중앙회가 힘겨루기하면서다.
애초 수협은행은 지난달 9일 새로운 행장을 내정할 예정이었으나 인선과정이 한 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수협은행은 5일 차기 수협은행장 후보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했으나 최종 내정자를 선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협은행 행추위는 오는 10일 행추위를 진행해 행장 선임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현 이원태 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일까지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도 이날 열릴 예정이어서 적어도 10일까지는 선임을 완료해야 한다.
수협은행 내부 규정에 따르면 은행장의 임기가 만료되면 대행체제가 가동되게 돼 있다. 따라서 자칫 대행체제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이할 수 있다.
상법상으로는 후임이 확정되기 전에 전임 CEO가 임시방편으로 맡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이원태 현 행장이 맡아야 한다. 어찌 됐건 초반부터 행정 공백이 불가피한 셈이다.
수협은행장 인선이 이처럼 '난항'을 겪는 이유는 정부와 수협중앙회가 수협은행의 지배구조를 놓고 격하게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수협은행은 2001년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로부터 공적자금 1조1천581억원을 받았다. 누적적자에 시달려 세금이 투입된 것이다. 수협은행은 공적자금 상환계획에 따라 2017년부터 11년간 분할상환을 해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 후 수협은행장은 주로 정부 측인 예금보험공사 인사가 맡아왔다. 최근에는 모두 관료 출신이 행장 자리에 올랐다. 이주형 전 행장과 이원태 현 행장은 모두 기재부 출신으로 예금보험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정부 측 사외이사인 송재정 전 한국은행 감사, 임광희 전 해양수산부 본부장,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이원태 현 행장의 연임을 주장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제와 금융 전문가인 정부 전직 공무원인 이른바 '관피아'가 비전문가인 수협중앙회 출신보다 낫다는 논리다. 이원태 행장의 '짠물 경영'으로 재임 기간 흑자를 이뤄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수협중앙회 측도 강하게 맞서고 있다. 박영일 전 수협중앙회 경제사업 대표, 최판호 전 신한은행 지점장 등 수협중앙회가 추천한 2명 등 은행 넘버 2인 강명일 상임감사를 밀고 있다.
강 감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강신숙 수협중앙회 후보는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이번만은 중앙회 출신에서 행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수협중앙회는 수협은행이 100% 자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 자본규제 기준인 '바젤Ⅲ'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9천억원을 증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수협중앙회의 엇갈림 속에 수협은행은 신용사업 분리 첫 출발부터 행장 없이 표류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양측이 볼썽사나운 싸움만 보여주고 있다. 금융소비자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밥그릇'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 어느때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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