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전두환정권, 인권침해 낙인 피하려 '전전긍긍'

입력 2017-04-11 06:00   수정 2017-04-11 06:13

[외교문서] 전두환정권, 인권침해 낙인 피하려 '전전긍긍'

유럽의 인권침해국 명단에서 빼라…총력외교·'알박기' 집회신고도

한·미, 한국 정국 상황 놓고 미묘한 신경전 벌여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이상현 김효정 홍국기 기자 =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인권침해국이라는 낙인을 피하려고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11일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유럽의회의 인권침해국 명단에서 한국을 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유럽순방에 앞서선 회담에서 인권문제가 거론되지 않도록 사전에 작업한 정황도 담겼다. 서독 방문을 앞두고는 행여 교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할까 봐 미리 '알박기' 집회신고를 할 정도로 치밀했다.

또 미국과도 국내 상황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 유럽 인권침해국 명단서 빼라…총력 외교





'1983∼1986년 구주의회(유럽의회) 인권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유럽공동체(EC) 내 유럽의회가 1983년 5월 세계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꼽은 아시아의 인권침해국 7곳에 포함됐다.

정치범에 대한 사형이 일반화한 국가라는 것이 이유로, 이듬해 4월 유럽의회는 인권준수 상황을 감시할 협의 기구 창설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우리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무대응이던 정부는 유럽의회 정치위원회가 1985년 5월 한국을 다시 인권침해국에 포함했다는 AFP통신의 보도가 나오자 부산하게 움직였다.

정부는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채택될 결의안에서는 한국을 삭제한다는 목표 아래 당시 신정섭 주벨기에 대사에게 유럽의회 의원들을 설득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신 대사는 유럽의회 의원들을 만나 한국의 긍정적인 면을 설명하고 인권침해국에 포함된 데 유감을 표하며 삭제를 요청했다. 면담에서 일부 의원들은 한국과 EC 간 무역·어업협정 체결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결국, 그해 10월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는 인권침해국 명단에서 한국이 빠진 결의안이 채택됐다.

한편, 영국 상·하원 의원 120명으로 구성된 '영국의회 인권그룹'이 1986년 5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차기 총선은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지길 희망한다"는 요지의 서한을 보낸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 유럽순방서 인권문제 거론될까 '노심초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6년 4월 영국·서독·프랑스·벨기에 등 유럽 4개국 순방에 나서기 전 외교당국이 각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인권 문제가 거론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외교문서에는 담겨 있다.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은 순방을 한 달여 앞둔 86년 2월 14일 순방국 대사들에 보낸 전문에서 "한국 국내문제 특히 일부 서방 언론이 언급한 인권문제는 정상회담에서 거론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방침이니 이를 유념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시는 신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가 본격화되고,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의 고문 폭로 등으로 국내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정순근 당시 주독대사가 한 행사에서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서독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보고한 전문(86년 2월23일 작성)을 보면, 유럽도 한국 상황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폰 바이체커 대통령은 심히 격앙된 어조로 '한국민의 기본권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한다'면서 '현재와 같은 국제 여론하에서 어떻게 성과있는 방독을 기대하느냐. 지금 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언급했다"고 정 대사는 보고했다.

자리를 함께한 겐셔 서독 외무장관도 "지금과 같은 국제여론이 계속되는 경우, 방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한국 정부가 야당에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임이 한국 정부에 유익할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정 대사는 전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사전 작업이 통했는지 막상 정상회담에서는 영국, 프랑스, 서독 등 어느 곳에서도 한국의 인권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유럽 순방 전 교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우려해 주요 장소에 미리 집회 신고를 내는 이른바 '알박기'를 하기도 했다.

정순근 대사는 순방 한 달 전인 86년 3월6일 "불순교민의 반정부 시위 등 사전봉쇄 대책의 일환으로 2월27일 집회 가능성이 있는 대사관저, 본 시청앞 광장 및 국립묘지 전면지역에 재독 한인연합회장의 협조로 행사 당일자 환영행사 집회신고를 했다"고 외무장관에게 보고했다.



◇ 한미, 한국 국내상황 놓고 미묘한 신경전






당시 전두환·레이건 정부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문제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상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1986년 5월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방한 당시 우리 정부는 동행하는 개스턴 시거 당시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신민당의 김영삼·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인사를 만날 계획이라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장선섭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과 데이비드 램버트슨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의 5월 6일 전화통화 내용을 보면 장 국장은 "신민당뿐만 아니라 국회 내 의석을 가진 모든 야권과 민정당 인사와도 같은 형식의 면담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슐츠 장관 방한 기간 '재야 인사에 대한 가택연금 등 억압조치가 없기를 바란다'는 뜻을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슐츠 장관의 방한 직전 '5·3 인천사태'가 터지자 우리 정부는 이를 일부 '급진 좌경분자'들의 폭력 행위로 규정하며 반미주의에 대한 미국 측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애썼다.

5·3 인천사태는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벌어진 재야와 학생운동권의 대규모 시위로 129명이 구속된 사건이다.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은 슐츠 장관과의 회담 직후 별도로 만나 인천 사태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5공 실세'로 꼽히는 허문도 당시 청와대 정무 1수석도 같은 날 시거 차관보와 심야 회동을 하고 "인천 사태에서 나타난 반미 구호에 대해서는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문도 수석과 시거 차관보의 5월 7일 밤 '면담요록' 문서에 따르면 허 수석은 "김대중을 위시한 반정부 세력은 공산주의적 일부 학생 및 과격 인사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미감정이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를 민주화 세력을 매도하는 구실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1984~1985년의 '갤럽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대한국관', '미국인의 대한국관 여론조사' 등 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4년 미국의 정책연구기관인 포토맥연구소가 실시한 여론 조사의 '국익 관련 중요도' 순위에서 한국이 14위를 차지하자 반색했다.

이에 정부는 1985년 2월 대미 홍보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하고자 2만5천 달러를 들여 포토맥연구소와 함께 미국인 1천750명 대상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이 한국내 인권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1980년 조사에 비해서는 긍정 대답이 8%P 상승하고 부정적 대답은 10%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은 또 응답자의 49%가 한국과의 관계가 인권 상황에 좌우되면 안 된다고 답한 부분에도 주목하는 모습도 보였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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