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시중은행과 비교하면 손실부담 커
수용여부 관계없이 2천700억∼3천900억원 손실…배임 책임 우려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국민연금공단의 장고(長考)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우조선해양[042660]의 구조조정안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31일 투자관리위원회에 이어 지난 5일 투자위원회까지 열었지만, 대우조선 구조조정안 수용 여부를 놓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채무조정안을 수용하든, 이를 거부하든 막대한 손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 전체 발행잔액 1조3천500억원의 30%에 육박하는 약 3천900억원어치를 들고 있다.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오는 17∼18일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에서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하는 채무 재조정을 마무리한 뒤 신규 자금 2조9천억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채무 재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천682억원, 이를 거부하면 3천887억원의 평가손실이 예상된다.
두 경우 모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5년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로 제시한 1천388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의 분석을 전제로 할 때 평가손만 놓고 보면 금융당국의 채무 재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선뜻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형평성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금융당국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100%, 시중은행 80%, 사채권자 50%로 출자전환 비율을 제시했지만, 이는 선수금환급보증(RG) 채권을 제외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은과 수은, 시중은행의 RG채권까지 포함할 경우 이번 구조조정안에 따른 출자전환비율은 산은과 수은이 9%, 시중은행이 20%, 사채권자가 50%로 파악된다.
채무 재조정안이 수용돼 별 차질 없이 RG채권이 상환되면 산은·수은과 시중은행의 부담은 애초 제시한 출자전환 비율이 대폭 줄지만, 사채권자는 그대로 50%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아울러 출자전환하는 주식의 가치를 지난해 12월 산은이 출자전환한 가격과 동일한 4만350원으로 책정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우조선 주식은 거래 재개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인 데다가 최근 외부 감사기관의 '한정 의견'으로 코스피200에서 제외되면서 큰 폭의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
대우조선의 주가가 거래 재개 후 업계 안팎에서 추정한 5천원대를 유지한다고 해도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했을 때 국민연금의 회수율은 12.3%에 그친다.
특히 대주주인 산은은 이미 지난해 대우조선 주식 전량을 주당 1원으로 손실 처리했음을 고려하면 주당 4만원이 넘는 가격은 물론이고 5천원도 사채권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이다.
국민연금이 이번 투자위원회에서 채무 재조정안 찬반과 관계없이 분식회계로 입은 회사채 투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관련 소송을 확대하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채무 재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출자전환을 하는 회사채 50%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형사소송법상 업무상 배임이 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2012∼2015년 발행된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자한 금액은 총 3천887억원으로 파악된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는 2008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이뤄졌다.
분식회계를 조직적으로 묵인·방조·지시했다는 이유로 최근 1년간 신규감사 업무정지 제재를 받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외부회계감사를 맡은 시기(2010∼2015년)와도 겹친다.
따라서 분식회계에 따른 잘못된 재무제표를 토대로 발행된 회사채에 투자해 발생한 손해를 대우조선이나 딜로이트안진 등으로부터 배상받아야 한다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이다.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이번 채무 재조정안이 부결되면 대우조선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초단기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바로 들어가게 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의 수용 여부 등에 대해 투자위원회를 통해 다음 주 말까지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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