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돌연변이 딸은 빈혈이지만 흡연자인 아버지는 발현 안 돼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흡연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이 상식이다. 폐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포함해 온갖 질병과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확고히 입증돼 있다.
그러나 흡연이 건강에 오히려 도움이 된 사람도 있다.
8일 미국 텍사스주 라이스대에 따르면 이 대학 생명과학과의 존 올슨 교수 연구팀은 올해 2월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생물화학저널'(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에 특이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나오게 된 계기는 만성 빈혈 증세를 보이는 20대 여성의 사례였다.
의료진은 이 여성이 빈혈에 시달리는 원인을 추적한 결과 인체 내에서 산소를 전달하는 적혈구 속 단백질인 헤모글로빈과 관련된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그 원인임을 밝혀냈다.
헤모글로빈 돌연변이는 1천종 이상이 알려져 있으며 이 중 건강에 영향이 있는 것은 드물지만 간혹 있다. 이런 경우를 '헤모글로빈병증'이라고 부른다.
이 환자 가족은 독일 만하임에 살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터키의 키르클라렐리에서 태어났으며, 연구진은 도시나 병원 이름을 따르는 관행에 따라 이 돌연변이를 '키르클라렐리 돌연변이'라고 명명했다.
유전자에 키르클라렐리 돌연변이가 있으면 헤모글로빈이 스스로 산화해서 분해되어 버리는 경향이 커진다. 이 때문에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적혈구가 파괴되는 경우가 흔해 빈혈이 생긴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똑같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이 여성의 아버지에게는 평생 빈혈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담배 연기 속의 일산화탄소(CO)가 이 돌연변이를 지닌 사람들에게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 때문에 똑같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지만 비흡연자인 딸은 빈혈이고 흡연자인 아버지는 빈혈이 아니라는 것이다.
키르클라렐리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의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는 능력이 낮은데, 이런 사람이 흡연 등으로 일산화탄소를 흡입하면 헤모글로빈이 산소 대신 일산화탄소와 결합하면서 자체 산화에 따른 파괴가 방지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올슨 교수는 "(환자 아버지의 경우) 혈액이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운동선수는 되기 어렵겠지만, 흡연 덕택에 빈혈에는 시달리지 않았다"며 "이런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저항력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여성 환자가 빈혈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흡연하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다며 "비타민 C등 항산화제를 다량 섭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다만 이 환자의 경우 간접흡연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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