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지성림 기자 = 전두환 정부가 1980년대 당시 중국인들의 망명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11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중국인이 한국 재외공관에 망명 또는 망명 협조를 요청한 경우는 최소 4차례로 확인됐다.
1980년 1월 영국 주재 은행원이었던 장취안린(張詮林)은 영국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와 3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했다.
망명 동기에 대해 장 씨는 "중국에는 자유가 없으며 보수가 적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이 동양권 국가이며 반공 국가이기 때문에 우선 한국대사관에 온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사관은 "제3국 망명에 협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며 그를 돌려보냈고, 당시 외무부는 "망명 요청인은 일시적 비호를 정당화시킬만한 긴박성이 인정될 수 없는 제3국인"이라며 대사관의 결정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대사관을 떠난 후 장 씨는 영국 주재 서독대사관과 영국 경찰에 잇따라 망명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영국 당국은 장 씨와 인터뷰를 통해 회사 상사와의 충돌이 직접적인 망명 동기임을 밝혀내고 그를 설득해서 돌려보냈고, 장 씨는 복귀한 지 4일 후 베이징으로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4월에는 일본을 방문한 펑전(彭眞)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수행자 중 한 명이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에 정치망명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의 익명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사안이 외무부에 보고되자 당시 외무부 장관은 '재외공관에서의 망명자 등의 처리지침'을 거론하며 "외국인의 아국(한국) 공관에의 망명 요청은 인정하지 않고 있고, 국제법상 외교공관의 비호권이 없으므로 (중국인의) 서한은 묵살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또 외무부 장관은 1986년 8월 호주에 관광객으로 왔다가 현지 한국대사관에 대만으로의 망명을 위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호소한 중국인 왕은강에 대해서도 '입국 거부' 방침을 내렸다.
우리 대사관이 중국인의 망명을 도와준 경우도 있었지만, 전두환 정부의 외무부는 이에 대해 달갑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1981년 볼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볼리비아에 파견된 중국 정보기관 요원 종안(種安)의 망명에 협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시 외무부는 "중국 정보기관원의 정치망명을 위해 귀관(볼리비아 주재 한국 대사)이 주재국 관계기관에 직접 인도한 것은 중국 측이 아국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아국의 대중국 관계개선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전두환 정부가 중국인의 망명 요청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양국 간 교류 확대에 힘을 쏟던 당시의 분위기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yooni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