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외교문서에 김일성 방소 관련 美국무부·CIA 판단 소개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86년 10월 고르바초프 정권으로부터 부자세습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소련을 방문한 것으로 한미 양국이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외교부가 11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 주석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초청으로 86년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모스크바를 공식 친선방문했으며 김영남 부수상 겸 외교부장, 허담 정치국원 겸 대남사업 담당 비서, 권희경 소련주재 북한대사 등이 수행했다.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방문 목적에 대해 "국무성(국무부) 및 중앙정보국(CIA)의 다수 의견은 무엇보다 김일성 부자의 세습체제에 대한 소련 측의 확실한 지지 확보에 가장 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F-16에 맞서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미그-29 등 신예 무기를 획득하려고 소련을 찾았다는 소수 의견도 함께 명시됐다.
주미대사관 측은 김일성이 소련 지도층으로부터 김정일에 대한 선물을 가져왔다는 평양방송의 보도를 거론하면서 세습체제에 대한 소련의 지지 확보가 가장 큰 방문 목적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9월 방북한 야루젤스키 폴란드 서기장이 동구권 국가로서는 최초로 김정일을 공개 초청한 점도 무관하지 않다고 대사관은 설명했다.
외무부는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군 현대화, 경제침체 극복, 88 서울 올림픽 대책, 김정일 세습체제의 정착 등을 위한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 획득"을 방문 목적으로 열거했다.
이 가운데 세습문제에 대해 "소련 측의 공개적 지지 표명은 없었으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면서 "고르바초프는 김일성 및 김정일에 대한 선물을 증정했다"고 부연했다.
박수길 외무부(현 외교부) 제1차관보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고르바초프 체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 내지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고 이점에 있어 북한을 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북한의 권력세습 지지 요청을 수락한 것 같다"고 방문 목적을 분석하기도 했다.
북한과 소련 양국은 김정일을 당 서기 및 정치국원 자격으로 모스크바에 초청하기로 합의했으나 시기를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한캐나다대사관은 "소련 측이 김정일은 어리석고 친중국계 인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세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엇갈린 관측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노동당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으며 1985년 3월 권력을 장악한 고르바초프로부터 지지가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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