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근무 80시간 지키기 쉽지 않아…근무시간표 조작·암묵적 강요 여전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김잔디 기자 = "전공의가 80시간만 근무하면 병원이 안 돌아갈 걸요. 근무일지는 제대로 적고 그냥 초과근무하는 거죠."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A씨의 말이다. 주당 80시간 근무를 골자로 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일명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된 지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현장의 변화는 크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오히려 '가짜' 당직 일지를 작성해야 하는가 하면 눈치 보기도 더욱 심해졌다고 고충을 토로하는 전공의들이 많다.
◇ 80시간만 일하고, 쉰다고?…"천만의 말씀"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과정을 거치는 의사를 말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명칭으로 친숙하다.
대부분의 전공의는 주당 80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2015년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 1천793명에 조사한 결과 52.9%가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전공의들의 과도한 근무시간은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고, 이런 근로환경을 개선하고자 전공의특별법이 도입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공의의 주당 80시간 근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추가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를 내팽개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공의 A씨는 "당직을 떠나 주치의를 맡은 환자의 진료가 끝나지 않는데 어떻게 퇴근할 수 있겠느냐"며 "외과의 경우에는 수술 도중에 나갈 수 없어 추가 근무하는 일이 다반사다"고 말했다.
전공의특별법 도입 후 근무시간표 조작과 암묵적 강요도 빈번해지고 있다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했다.
대한전공의협회 관계자는 "주당 80시간을 넘겨 근무한 사실이 문제가 될까 봐 근무일지를 이중으로 작성해 관리하거나 지도교수가 의사의 사명감을 운운하며 퇴근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전공의 대신 간호사가?…꼼수 부리는 병원들
추가 인력 없이 전공의특별법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전담간호사 또는 수술전담간호사로 불리는 'PA'(Physician Assistant·의사보조인력)를 활용한다는 증언도 나온다.
PA는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의사는 아니므로 전공의처럼 수술이나 처방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 병원에서 PA가 전공의처럼 처방이나 처치를 한다는 증언이 의료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PA 고용은 인정하면서도 전공의를 대신해 활용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고 있다. 전공의특별법을 위해 인력 운용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전공의특별법 중 수련시간에 관한 규정이 올해 12월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는 점을 빌미로 제도 정착을 위한 노력보다는 아무런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는 의료기관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전공의특별법 중 80시간 근무시간에 관한 부분은 인력 확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료계 요청을 반영해 올해 12월까지 유예된 상태다.
실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국내 '빅5 병원'으로 꼽히는 병원을 포함해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전공의 추가 확보나 애로사항 해결 등을 위한 지침을 아직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관계자들 역시 전공의와 마찬가지로 전공의특별법 시행이 의료계 현장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한다고 보고 있었다.
B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교수가 현실과 괴리가 많은 법으로 판단한다"며 "결국 인력과 비용 문제로 귀결되는 데 정부 차원에서 이 부분의 지원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현지 전공의협의회 평가·수련이사는 "인력 공백과 진료 단절을 막기 위한 병원 측의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며 "각 병원이 전공의 업무 중 수련과 관련 없는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입원 전담 전문의'를 채용하는 등 법의 안착을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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