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 불교미술의 권위자이자 각종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미술사학자 호불(豪佛) 정영호 박사가 7일 오후 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황수영(1918∼2011) 박사가 그의 스승이다.
고고미술동인회에 참여해 황수영 박사, 최순우(1916∼1985)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간송미술관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 등과 교류했다.
고교 교사를 하다 1967년부터 단국대와 한국교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한국문화사학회 회장,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는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장을 지냈다.
그는 특히 석조미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도굴범에 의해 훼손됐을 때 탑 안에서 사리장엄(舍利莊嚴)을 발견해 학계에 알렸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양양 진전사 터에서 부도(보물 제439호)와 삼층석탑(국보 제122호)을 발굴해 복원하기도 했다.
또 1970년대에는 5세기에 고구려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건립한 충주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와 6세기에 신라 진흥왕이 세운 비석인 단양 적성비(국보 제198호)를 잇따라 발굴해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풀 단서를 제공했다.
특히 단양 적성비는 1978년 고인이 답사를 하던 중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던 돌부리에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은 1977년부터는 일본 쓰시마섬(대마도·對馬島)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쓰시마섬에서 세상을 떠난 최익현 순국비를 비롯해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를 기리는 비석을 세우고 한국 관련 유적을 발굴했다. 2004년에는 쓰시마섬 주민 20여 명이 고인의 섬 100회 방문을 맞아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우현문화상과 만해학술상을 수상했고, '백제의 불상'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2015년에는 학연문화사가 '호불 정영호 박사 팔순송축기념논집'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민대자 여사와 딸 혜림·혜정·순미·윤정 씨, 사위 허중권(육군 3사관학교 교수)·임승순(고용노동부 부이사관)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8시다. ☎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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