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국, 금지 조례안 마련…54개 단체, 인권침해 반발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 멜버른 시가 노숙을 불법화하는 조례안을 마련하고 노숙인 단속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복지단체와 종교단체들은 노숙인 처벌은 인권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 당국은 지난 1월 대규모 국제행사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당시 번화가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주변으로 노숙인들이 몰리고 이 모습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자 소위 '노숙인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 당국은 그동안 노숙문제에 관대하게 대응해 왔으나 외국인을 포함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크게 느는 것과 함께 노숙인들이 대거 몰려 거리 한쪽을 차지하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보행자들의 통행 불편이나 도시 이미지 훼손은 물론 노숙인들의 행위가 구걸에서 벗어나 갈취 수준으로 악화했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시 당국이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이에 따라 시 당국은 노숙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만들고 현재 주민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과정을 밟고 있다.
조례안에 따르면 거리 등 아무 데서나 잠자는 행위를 포함해 공공장소의 캠핑은 금지되며, 노숙인들이 텐트 등 소지품을 방치하면 벌금을 부과하거나 이들 방치된 물품을 압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주민들에 대한 의견 수렴과정이 진행되면서 조례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고 호주의 헤럴드 선이 9일 보도했다. 제출된 2천500여건의 의견 중 84%가 조례안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6일에는 복지단체와 교회 지도자, 법률전문가 등이 포함된 54개 단체가 공동으로 노숙문제를 처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라며 14개 항의 권고문을 제시했다.
권고문에는 노숙인 물품을 안전하게 지킬 보관함을 마련해주고, 야간에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노숙인 지원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특히 노숙인으로 전락하기 전에 초기 대응을 강화하라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법률서비스 지원단체인 '저스티스 커넥트'(Justice Connect)의 루시 애덤스 변호사는 "노숙자가 되는 것은 선택한 게 아니고, 벌금을 매긴다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허핑턴포스트 호주판에 말했다.
그는 또 시 당국의 계획은 노숙인들을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멜버른 밖 외곽으로 몰아내 문제를 더 확대할 뿐이고, 노숙인들로서도 기존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어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