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마다 반복된 '수사권 조정' 공약…19대에는 과연?

입력 2017-04-10 06:05   수정 2017-04-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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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마다 반복된 '수사권 조정' 공약…19대에는 과연?

후보 시절 저마다 공약 제시…당선 이후에는 이견조정 매번 실패

19대 대선, 5당 후보들 검찰개혁 한목소리…당선 후 의지가 좌우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9대 대선에서는 과거 대선과 마찬가지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이 주요 화두중 하나로 떠올랐다.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보유해 권한이 지나치게 크고 그에 따른 폐해가 발생하므로 궁극적으로는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는 방향으로 권한을 배분하자는 것이 수사권 조정의 골자다.

지난 20년간 4차례 대선에서 당선된 후보들은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경찰의 독자적 수사를 일부 인정하는 방식의 수사권 조정 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당선된 이후 법무부와 검찰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공약 이행은 흐지부지됐다.


◇ 김대중 정부, 자치경찰제 공론화 계기로 수사권 논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15대 대선후보 시절 지방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했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하고, 지방경찰을 해당 자치단체장 관리하에 둬 지역 실정에 맞는 독립적 치안활동을 펴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1999년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가 공론화하자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패키지로 들고나온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자치경찰 수사를 지휘하면 지자체장에게 지방경찰을 맡긴다는 취지와 모순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법무부는 경찰 측 주장이 형사소송구조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인권을 악화한다는 이유를 대며 강력히 반발했다. 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들은 수사권 독립의 당위성을 내세워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됐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이 두 국가기관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검찰과 경찰에 수사권 문제에 관한 모든 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수사권 조정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 노무현 정부, 대통령이 적극 나섰으나 결국 실패

2002년 16대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꽤 구체적인 수준의 경찰 수사권 독립 공약을 내놨다. 그는 절도, 폭력, 교통사고 등 민생치안 범죄에 관해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4년 9월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체가 출범, 양측이 함께 수사권 문제를 논의할 공간이 마련됐다. 양측을 대표하는 전문가들로 이뤄진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도 구성돼 논의가 본격화했다.

논의 진행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여러 공식 석상 발언을 통해 수사권 조정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여 한때 경찰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핵심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95·196조 개정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합의는 결렬됐고, 두 기관이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등 갈등이 깊어지자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나서 논쟁 중단을 지시했다.

이후 논의는 국회가 넘겨받았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검-경 관계를 상하가 아닌 협력·견제 관계로 규정한 조정안을 내고, 일부 의원이 이런 취지를 반영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 이명박 정부, 사개특위 논의 결국 '용두사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7대 대선후보일 당시 수사권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 공약을 내지는 않았다. 다만 "5대 강력범죄를 제외한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 독자적인 수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야권에서 '정치검찰' 개혁 요구가 터져 나왔고, 이듬해 2월 구성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포함한 법조개혁 의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개특위 역시 검-경의 첨예한 입장차와 그에 따른 논란을 제대로 조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개특위가 내놓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현실에 맞게 명문화했으나 사법경찰관이 '모든 수사'에서 검사 지휘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검사의 수사 지휘 관련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는 일견 경찰에 힘을 싣는 측면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찰이 이미 많은 사건에서 행사하던 수사개시권과 진행권을 명문화한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검사 지휘 범위를 '모든 수사'로 규정한 부분은 일선 경찰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검찰은 검사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한 개정안 내용을 두고 격하게 반발했다. 수사권 조정 논의에 참여한 대검찰청 지도부가 집단 사의를 표명하자 결국 김준규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검사 지휘 범위를 명시한 대통령령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정 과정에서도 큰 갈등이 있었다. 국무총리실이 강제조정에까지 나섰으나 검-경간 이견 조율에는 실패했다.

경찰은 총리실이 내놓은 조정안이 수사 전 단계인 내사에서 검찰이 경찰을 사후 통제할 수 있게 하고, 경찰이 수사하던 사건이 특정 조건에 해당하면 수사를 중단시키고 송치하도록 지휘할 권한을 줬다며 크게 반발했다.



◇ 박근혜 정부, 구체적 추진 없이 원론적 언급뿐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 비리 의혹으로 검-경 수사권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경찰 수사권을 강화하는 방향의 수사권 조정 공약을 내놨다.

검찰과 경찰을 서로 감시·견제하는 관계로 재정립하고, 현장 수사가 필요한 사건을 포함해 상당 부분의 수사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등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는 것이 큰 그림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수사-기소 분리를 목표로 두되, 일단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수사권 분점을 통한 합리적 배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선 이후에는 이전 정부에서와 마찬가지로 검-경간 큰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해 '국민의 편익 관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국가 수사시스템 설계' 정도로 원론적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



◇ 19대 대선 후보들,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개혁에 적극적

5월9일 치러지는 19대 대선은 작년 각종 검찰 비리에 이어 국정농단 사태까지 벌어진 뒤여서 모든 후보가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을 통해 검찰 권력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공수처 신설과 수사-기소권 단계적 분리 추진 입장을 냈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영장 신청 주체로 검사만을 명시한 현행 헌법 조항을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으로 고쳐 경찰이 검찰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장을 신청할 길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공수처 설치로 검찰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은 형사소송법부터 크게는 헌법 개정까지 수반하는 거대한 작업인 데다, 이전 정부 사례에서도 보듯 검찰의 반대와 경찰의 요구를 조율하기가 매우 어려워 당선인의 추진 의지가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pul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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