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아닌 나 생각할 수 없어"…"연기할 때만 없던 정신이 차려져"
"2012년 '해품달' 때 황달 증세…드라마 끝나자마자 수술실행"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 드라마 안 했으면 난 벌써 나를 놓았어요. 연기하려고 억지로 먹고 버텼어요. 다만 내 상태가 나빠진 게 이미 촬영 시작하고 벌어진 일이라 너무 미안해요. 폐 안 끼치고 드라마를 무사히 마치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폐를 끼친 것에 그저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
'이 드라마'란 지난 2월 막을 내린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다.
김영애는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건강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마지막 촬영까지 4개월간 병원에서 외출증을 끊어가며 녹화 현장을 찾는 투혼을 발휘했다.
병원에서는 당장 연기를 그만두고 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연기를 해야 하기에 좀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무사히 드라마를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배우 아닌 나 생각할 수 없어"
김영애는 매사 깔끔한 성격이다. 맺고 끊는 것도 확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 그가 드라마 촬영 도중 병원에 입원했으니 몸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걱정시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병원 신세를 지게 됐으니 이를 어째. 병원에서 분명히 몇년의 시간이 더 있다고 했는데…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어쩌겠어요."
그는 "그래도 드라마 할 때만 없던 정신이 차려진다"고 말했다.
"누구는 다 접고 시골 가서 공기 좋은 데 살라고 해요. 그런데 난 아니에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 없어요. 연기하지 않는 김영애라…처음 며칠은 좋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이후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연기 없이 무슨 의미로 살아요? 몸이 아픈데 대본이 외워지느냐고 묻는데, 연기할 때 대사 외우는 건 문제 없어요. 분량이 많지는 않잖아요. 몸이 안 좋으면 차라리 정신이라도 흐려지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을 가끔 하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정은은 "김영애 선생님은 대본 암기로 불면을 평생 달고 사셨지만 항상 촬영장에서는 흐트러짐이 없으셨다"며 "그래서 아프게 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철저하신 준비로 명성이 높다"고 말했다.
'베테랑 배우' 김영애에게도 연기는 매 순간 자기와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칭찬받는 맛에 연기"…췌장암 판정후 연기투혼 더 불태워
원래도 '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온 그이지만, 암투병을 하게 되면서 그는 이를 악무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2012년 '해를 품은 달' 때 황달 증세 있었어요. 열이 막 오르고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그런데 촬영에 지장을 줄까 봐 이를 악물고 참았어요. 그러고는 드라마 끝나자마자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췌장암이었죠."
이후 그는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암이 전이됐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병의 무게에 무너지기 십상일 때 그는 정반대로 연기투혼을 더 불태웠다.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 '메디컬 탑팀' '미녀의 탄생' '킬미 힐미' '마녀 보검' '닥터스'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현기증' '카트' '허삼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인천상륙작전'가 그가 투병 중 출연한 작품이다.
"작년 영화 '판도라'를 보고 나서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가 장문의 칭찬 편지 보냈어요. 그 맛에 연기하는 거예요.(웃음) 난 내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연기할 때, 그게 좋아서 연기 하는 거예요. 내가 배우인 게 너무 좋고 연기자인 게 좋고, 어떤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너무 좋아요."
김영애는 "대본에 뼈는 만들어져 있지만 거기에 연기로 옷을 입히고 색깔 입히는 게 너무 재밌다"며 "연기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둘 다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작으로 드라마 '닥터스'와 영화 '애자' '변호인' '판도라' '형제입니다' 등에서의 연기가 재미있고 보람됐다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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